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필자가 대전 우송대학교에 온 지 벌써 7년이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세월이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주었고 그 선물들을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풀어보고자 한다. 비록 은퇴했지만 미국 공군장교로서, 현재는 우송대학교 총장으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로서도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 아내와 54년을 동고동락해왔다. 벌써 장성한 손자들이 있는데 얼마 전에는 사위인 그렉과 19살이 된 손자 닉이 한국을 방문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이 살고 있는 애틀랜타보다 한국이 더 서늘하다면서 한국에서의 첫 느낌을 즐거워했다. 인천공항에서 바로 대전 집으로 도착해서 근처의 작은 한식당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사실 피자와 햄버거가 주식인 그들에게 한식(우리 부부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음식이지만)이 입맛에 맞을까 속으로는 꽤나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날씨를 무척 만족스러워한 것처럼 김치도 그들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쉴 새 없이 김치를 입으로 가져가는 그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7년의 세월은 필자를 반 한국 사람으로 만든 모양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 필자가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 모습을 보고 짓는 미소를 이제는 필자가 미국 사위와 손자 앞에서 짓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위와 손자를 데리고 바로 충남 부여로 출발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이곳의 역사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이다. 그곳에서 멀리서 온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 민족의 뿌리와 역사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느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부여에 도착해서 먹은 메뉴도 아주 한국적이고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불고기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위와 손자는 아주 맛있게 먹었고 아내와 필자는 또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부여박물관과 백제문화단지였다. 부여는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어서 백제 수도로서 최적의 장소였지만 멸망한 왕국이어선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히 박물관과 문화단지는 1400년 전의 화려했던 역사를 잘 재현해 놓았다. 특히, 백제의 궁은 보기가 힘들었는데 백제문화단지 안에 잘 조성해 놓았다. 정양문을 지나 사비궁 안에 들어선 사위와 손자는 그 웅장함과 고풍스러움에 압도당한 것처럼 보였다.

4-6세기에 백제는 찬란한 문화와 의식을 꽃피웠으며 그 당시 백제는 일본에 불교와 문화 그리고 문물을 전해준 선진국이었다는 설명을 해 주었고 당시 강력한 국력과 발전된 문화는 일본의 문화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시아의 선진국 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리는 그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어서 복원한 계백장군의 집을 방문했고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도 그들에게 해 줄 수 있었다. 그저 그들에게는 장인이자 할아버지인 필자가 자연스럽게 한국 특히 백제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해 주니 나 자신도 뿌듯했다.

그날 저녁에는 대전이 연고지인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의 홈경기를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경기가 취소되어 아쉬웠다. 하지만 사위와 손자와 함께한 나흘간의 일정을 한국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보는 데 의미를 두었던 필자는 그들이 더없이 만족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런데 필자가 그들과의 일정을 지내고 한 번 더 슬며시 미소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마치 내 고향땅을 소개하는 것처럼 진한 애정으로 그들에게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들이 기쁘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기를 원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대전은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앞으로 외국인들에게 대전이나 백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때는 고향 얘기를 하듯 신나고 자랑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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