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저런 고얀 놈이 있나…." 이 말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이하 Ike)를 향해 내뱉은 말이다.

1953년 7월 27일, 통일 없는 휴전은 절대 반대라는 한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전쟁은 3년여 만에 휴전이 되었다. 미국은 2차 대전의 뒤처리를 모두 끝내고 이제는 새로운 세계전략에 몰두할 시점이 되었다. 1954년 7월 26일 미 대통령 아이크는 이 박사를 국빈 초대하였다. 이 박사는 7월 29일 미국 의사당에서 상하 양원 의원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였다.

그 이튿날 10시에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릴 차례다. 이 박사는 그 시간이 되어도 백악관 회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백악관 회의실에는 이미 아이크를 비롯한 덜레스 국무장관과 윌슨 국방장관 및 주한 미국 대사 등이 앉아 이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측의 독촉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오는데도 이 박사는 자신의 숙소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이 사람들이 나를 불러 놓고 올가미를 씌우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데 그래도 내가 꼭 가야 돼?" 그 전날 미국 측에서 보내온 공동성명 초안 중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권장하는 문구가 철저한 반일주의자인 이 박사의 마음을 건드렸던 것이다.

이 박사 일행은 약속시간보다 10분도 더 지나서야 백악관 회의실에 들어섰다. 화가 나 있는 사람은 이 박사만이 아니었다. 아이크도 마찬가지였다. 방으로 들어서는 이 박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낙서하던 자세로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 어제 한국에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내쫓았다면서요?" 이 박사 역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들은 스파이예요. 헬리콥터 타고 공중촬영만 하고 다녔어요." 이어 아이크는 한일 국교 정상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 박사는 구보다(久保田) 망언을 예로 들면서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응수했다. 화가 잔뜩 난 아이크는 미국이 전략상 필요하다는데도 한국이 그럴 수 가 있느냐는 투로 말하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버렸다. 이때 이 박사는 방을 나서는 아이크의 뒤꼭지를 향해 "저런 고얀 놈이 있나… 저런!" 하면서 극도의 흥분과 분노로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아이크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자 이제는 이 박사가 몇 분 후에 "약속이 있어 먼저 갑니다" 하고 나와 버렸다.

2007년 10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북한의 김정일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 엊그제 공표되었다. 이 대화록을 보면서 생각난 장면이 이 박사와 아이크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이 박사에게 있어 아이크는 누구인가? 분명히 이 둘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다. 미국은 엊그제까지 자신들의 고귀한 피를 흘리면서 우리를 도와준 우방이다. 전후 복구를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원조를 구걸해야 할는지 알 수도 없는 시점에 만나는 갑 나라의 대통령이다. 당시 우리는 폐허였으니 말이다. 이 박사는 그런 관계에 개의치 않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품격과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말까지도 서슴없이 쓰면서 상대의 의표를 찔러댔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 한 대화 내용을 보면 낯 뜨거운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흩날렸다.

그가 한 말 중에서 몇 마디만 인용해 보자 "나는 주적(主敵) 용어도 없앴다. 나는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변호인 노릇 했다. NLL(북방한계선)은 시끄러운 괴물이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다. (남한에서)여론조사 해보면 제일 미운 나라로 미국이 일번으로 등장한다. (남한 보고)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시지 마시라. 김대중 대통령이 김 위원장 하고 악수 한 번에 남쪽은 수십조 원 벌었다. 임기 마친 다음에도 평양에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해달라(뵙게 해달라)."

이런 기록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흐르지 않을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박사가 지하에서 이 대화록을 보면 "저런 고얀 놈이 있나…" 하는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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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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