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초빙교수 언론인

최근의 NLL 파동에서는 두 가지의 중대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하나는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고 다른 하나는 야당 일각의 안보관이다. 이런 문제로 시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터진 김에 바로잡고 가야 할 문제다.

일국의 정보기관 책임자인 국정원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한국이 아직도 정치 후진국임을 말해주는 인증샷이나 다름없다. 그 경위가 어떠하든 간에 간첩을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국가기관이 제 할 일은 제쳐 놓고 선거판에 끼어들어 한몫하려고 했다면 중대한 범죄행위다. 이는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파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선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백해무익한 짓이다.

이명박 정권과 함께 물러나야 했던 원세훈 국정원장이 도대체 무슨 영화를 바라고 그런 짓을 했는지 궁금하다. 또 국정원장이 그런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부당한 지시에 복종한 사람들도 문제다. 오늘날의 공무원들은 이제 정정당당하게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한다면 결코 처벌을 면할 수 없고 동정을 받을 수도 없다. 국정원과 더불어 일부 경찰간부들도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한몫 거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 때 정보기관과 경찰 같은 권력기관의 편들기 현상은 이번 계제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드러난 것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인 언동 가운데는 야당 일각의 위험한 안보관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2년 남북정상회담은 시기적으로도 아주 부적절했다. 자신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기에 그런 회담을 했다는 것부터가 무모한 일이었다. 더욱 무모한 것은 차기 대통령이 할지 안 할지도 모를 일들을 미리 약속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런 부당한 절차상의 이유만으로도 그 정상회담은 분란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었다. 그런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다는 언행을 보면 부적절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특히 미국이 제일 문제라고 했다든지, 한미 간의 최고기밀인 5029 작전계획을 거부했다는 얘기라든지, 북핵 문제를 제기하면 회담이 깨진다든지, NLL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한다고 맞장구를 쳤다든지…. 한마디로 큰일 날 소리들을 거침없이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정일 앞에서 너무 저자세를 보인 것도 문제였다.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해서 불만과 유감이 없을 수 없겠으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적장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설사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말이다.

북핵은 현재나 미래에도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최대의 현안이다.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하여 명실상부한 핵공격력을 갖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다. NLL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NLL은 1953년 휴전협정 당시의 남북한 점령선이다. 육지에서는 점령선을 따라 휴전선이 그어졌다. 해상에서는 그런 선을 긋지 않았지만, 우리와 유엔군 측이 그은 선을 북한도 오랫동안 지켜오다가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NLL이 점령선이 아니었다면 북한이 애당초 그런 선을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여야 싸움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야당이 결국 더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야당은 현재 여당에 밀리지 않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야당의 안보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라면, 다수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시헌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