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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학살 기적의 생존자 “착오로 구사일생”

2013-06-25 기사
편집 2013-06-24 21:43:27

 

대전일보 > 사회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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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살현장 기적의 생존자 故 염인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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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은 것은 기적입니다. 대전교도소 간수가 감방 안에 있던 수감자 숫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죽음을 면했습니다."

6·25 전쟁 초기 최대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단 1명 있었다. 대전에서 1946년부터 1950년까지 문학운동을 벌였던 고 염인수 <사진>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염 작가는 경찰에 붙잡혔다. 전쟁이 일어나자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가동맹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사전 검거한 것이다. "방안에 있던 동료들이 모두 끌려나갔다. 10명씩 묶어서 데리고 갔다. 내가 있던 방의 사람들이 끌려가는데 발이 마비돼 일어날 수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간수가 숫자를 확인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염 작가의 방에 있던 수감자들은 대전전투가 시작된 이후인 3차 학살(7월 16-17일) 때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북한 점령 치하에서 문학가동맹 대전지부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그는 거의 평생을 은둔과 도피, 노동일로 일관했다.

"해방 직후 젊은 시절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평생을 돌덩이처럼 억누르는 짐이 됐다. 문학을 하는 것도 제대로 직업을 갖는 것도 불가능했다. 행여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항상 숨어 살다시피 했다."

일본 동경농대를 나온 그는 대전의 농사시험장에서 근무하며 문학운동에 투신했다. 연기 전의에 살고 있던 안회남을 알게 돼 문단에 데뷔했고, 대전의 많은 문학청년들이 그를 따랐다. 대전에 살고 있던 하유상, 박용래, 민병성, 추식, 임완빈, 황린, 전형, 박희선, 김준성, 호현찬 등과 교류했다.

그러나 그가 교류했던 중앙의 김만선이 문학가동맹 사건으로 수배되면서 사회주의 성향의 인물로 몰렸다. 평생을 고통스럽게 이념의 굴레에 허덕였던 염 작가는 인생 말년의 삶에 여유가 생기자 다시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1912년 생인 그는 1983년 72세의 나이에 첫 작품 '장위고개'를 펴냈고 그 뒤로도 '회고' '남산일기' '깊은 강은 흐른다' 등의 산문집과 소설집을 펴냈다. 2006년 작고했다. 김재근 기자



※대전일보는 생전에 그를 인터뷰를 했지만 사업가와 고위직 공무원인 자녀를 걱정하며 기사화를 저어했다. 그의 희망에 따라 사후에 이 글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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