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섭 교육문화부 hds32@daejonilbo.com

대전시티즌이 시민구단으로서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월드컵 개최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일단 창단부터가 월드컵과 관련이 있었다. 1996년 한국의 FIFA 월드컵 공동 유치가 결정된 이후 대전시는 월드컵 개최 도시로 선정되기 위해 프로축구단 창단을 계획했다. 계룡건설,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 등 지역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기로 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대전시티즌이었다.

힘겹게 창단하긴 했지만 구단 운영은 쉽지 않았다. 창단 첫해 10개 팀 중 7위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보였으나 1998년 IMF 사태에 4개 기업중 계룡건설을 제외한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 등 3개의 기업이 파산, 재정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성적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좀처럼 자리를 잡고있지 못하고 있던 시티즌에게 한줄기 빛이 된 것 역시 월드컵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이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전국에 축구열기가 뜨거웠고 'K리그가 발전해야 한국축구가 발전한다'는 팬들의 성원아래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2003년 최윤겸 감독이 부임한 이후 대전시티즌은 구단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인 6위(12개 구단)를 기록했으며 홈에서 무려 77.3%의 승률(14승 6무 2패)을 기록해 홈승률 1위를 기록했다. 월드컵이 불러온 축구열기와 신임 감독을 필두로한 시티즌의 돌풍이 맞물리면서 대전은 2003년 평균관중 1만 9092명을 기록, '축구특별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2003년을 끝으로 간판스트라이커 김은중이 서울로 이적했고 이관우 역시 수원유니폼을 입는 등 프렌차이즈 스타들이 대거 빠져나가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지며 관중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1만명 이상 꾸준하게 방문했던 관중은 이제 평일엔 5000명을 넘기도 힘들어졌다.

여러 호재 속에 인기를 얻었지만 대전시티즌은 그 열기를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이제 2002년 월드컵 같은 '기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서울이나 수원처럼 대형 선수를 영입할만한 재력도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번 '축구특별시'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느냐는 결국 '대전만의 축구문화'를 만드는 데 달렸다. 최근 최하위의 성적 속에서도 이른바 '보살팬'들을 주축으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한화이글스 같은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이제 월드컵 후광은 없다. 기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만이 대전시티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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