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세종청사 관가와 세종시 주변에 재미 있는 얘기가 떠돈다.

"총리 위에 노조 있고, 노조 위에 버스기사 있다!"

뜬금없는 말이라고 일소에 부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다소 과장되고 희화화됐지만 그 속에 나름대로 고갱이가 있다. 최근에 일어난 정부세종청사 관련 2가지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하나는 올해 안으로 예정된 2차 공공기관의 이전을 내년 2월로 미루려는 것이다. 행정공무원노조가 안전행정부와 총리실에 연기를 요청을 했고 안행부가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노조는 혹한기 이사도 어렵고 현재 살고 있는 수도권 주택도 처분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1가구 2주택 문제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학업도 내세운다. 조금 말미를 주면 2월까지 전학하고 3월에 새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2번째는 통근버스 얘기다.

이달 들어 서울로 통근하는 세종청사 공무원 2000여 명이 연이틀 단체 지각을 했다. 지난 10일과 11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서 출근길이 늦어진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한 채 1시간 넘게 버스가 고속도로에 서 있었다. 한 두 사람이면 몰라도 수십 대에 탑승한 공무원들이 고속도로에 멈췄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이날 오전 여러 부처에서 회의가 연기되거나 무산됐다고 한다.

노조가 정부부처 이전 연기를 주장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여기에 끌려가는 안행부와 총리실도 우스꽝스럽다. 노조에 밀려 정부부처 이사라는 국가대사를 슬그머니 수정하려는 것이다.

정부부처 이전은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에 규정했고 이 법에 따라 그 해 10월 행정자치부가 부처 이전을 고시했다. 이전을 미루려면 고시를 바꿔야 한다. 법을 제정하고 스케줄을 발표한지 8년이나 지나도록 뭘 했다는 말인가.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두 달 늦춘다고 얼마나 정주여건이 나아지겠는가? 정부부처가 이전하면 거기에 따라 집도 장만하고 자녀들 전학도 준비하는 게 공직자의 자세다. 나라에서 법까지 제정하여 부처를 옮기는데 천천히 가겠다고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노조의 주장에 슬그머니 동조하는 안행부와 총리실도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세종시로 온 게 싫은 터에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만인지상 국무총리나 실세중의 실세인 안행부장관이 줏대 없이 좌고우면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암묵적으로 노조의 행위에 미친 척 따라가는 것이다.

'단체지각'도 할 말이 많다. 교통사고야 흔히 겪는 일이다. 문제는 고급공무원들이 무리를 지어 장거리 통근을 한다는 점이다. 아파트 장만이나 자녀 교육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적으로는 매우 비생산적이고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태평성대'라 천만다행이지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났다면 국정이 마비됐을 것이다. 1-2시간이면 적의 비행기나 미사일이 온 나라를 쑥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를 만든 가장 큰 목적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해소다. 나라의 녹(祿)을 먹는 공직자라면 국정과제 실현에 솔선해야 한다. 예로부터 공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일터 가까운데 거처를 두는 게 공직자의 기본 자세였다. 지난해 이사온 공무원이나 올해 내려와야 할 수도권 공직자 모두 세종시가 싫은 모양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종시 멀리하기'에 입을 맞추고 있으니 말이다.

노조 때문에 나라의 이사를 늦추고 교통사고 때문에 국정이 마비된다는 것은 한심하고 답답한 얘기다. 총리부터 변해야 한다. 허구한날 서울에서 머물게 아니라 세종청사에 자리잡고 진중하게 국정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국민들이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아무 얘기 않는다고 매사를 예쁘고 미쁘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신행정수도에서 행정도시 건설까지 충청인들은 10년 넘게 싸워왔다. 말이 없다고 속도 없는 게 아니다. 충청인들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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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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