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모처럼 남북이 이마를 맞대고 대화를 하나 했더니 역시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논의 의제는 어디로 가고 대화 상대의 격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북한은 일방적으로 대화의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언제나 그래 왔다. 금년은 남북의 정전(停戰)체제가 시작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그 60년 동안 북한은 그 정전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3대 세습체제와 핵 개발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평화의 길은 더 멀어지고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북한의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남북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여 다른 문제의 해결도 미루는 것은 핵 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핵 문제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로 해결하기로 하고 '우리끼리' 해결 가능한 문제는 또 그것대로 해결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남북 이산가족 문제도, 금강산 문제도, 개성공단 문제도, 탈북자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비정치적인 방식을 통해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신뢰 프로세스를 쌓아가면 어떨까 싶다. 좀 한가한 얘기 같지만 '남북학술재단'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역사공동체이자 민족공동체이고 환경공동체다. 그러기에 역사와 문화와 영토의 문제에서부터 환경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는 과장해서 말하면 모래알만큼이나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공동연구는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는 민족적인 과업이 아닌가 싶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부터가 바로 그러하다 할 것이다. 우리들의 역사가 중국에 의해 왜곡되고 변조되고 있는 지가 벌써 십수 년! 이 문제에 대해서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영국 아서왕의 카멜롯성(城)을 독일의 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의외로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기자였다. 탄복할 만큼의 기발한 비유다. 영국의 언론마저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남북이 공동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저항의식이 북한 학자들에게도 없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북한의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의 조희승 교수가 그러했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전(古典)들을 모조리 부정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왜(倭·일본)나 북적(北狄·대략 지금의 몽골), 서융(西戎·대략 지금의 티베트), 남만(南蠻·대략 지금의 베트남)도 중국사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열을 올린 적이 있다.

간도 문제 역시 남북이 함께 연구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이 범정부적으로 동북공정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간도 문제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훗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간도 문제를 비롯한 과거의 우리 영토에 대해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한쪽이 영토 문제로 외교적 시비가 걸린다면 남북한이 함께 대응해야 할 책무가 남북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독도가 그러하고 대마도가 그러하고 중국과의 국경 문제가 그러하다.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나 환경 문제나 재난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부터라도 남북이 함께 공동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몇 해 전 북한은 백두산의 활화산 가능성 여부를 놓고 남북한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를 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제안으로 회의가 열린 적도 있다. 여간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북한이 어쭙잖은 핑계로 대화를 중단했다 치더라도 실망할 것 없다. '남북학술재단'을 통해 신뢰를 쌓아 간다면 다른 문제도 저절로 풀려가지 않을까 싶다. 결코 한가한 얘기가 아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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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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