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우 증산도 교육위원

지난 5월 4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온 숭례문을 보면서 그때 느꼈던 장쾌함과 긍지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5년 전 화마에 휩쓸려 지붕과 현판이 무너져 내릴 때 받았던 충격과 애잔함의 여운이 아직 가슴 한 켠에 남아 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복원사업에 심혈을 경주한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숭례문을 대할 때면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숭례문이 국보 1호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도성의 정문으로서 민족의 수난사와 그 궤를 함께했고 고유한 건축기술과 양식에 담겨 있는 예술적 가치도 탁월함을 분명히 인정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국보 1호의 자격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숭례문은 일제가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후에 조선 고적 1호로 지정하였고, 이것이 광복 후에 국보 1호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국보 1호 숭례문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국보 1호란 민족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며 역사적, 문화적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숭례문보다는 4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塹城壇)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참성단은 산꼭대기에 세워진 돌로 쌓아 만든 작은 건축물이다. 화려함이나 규모와 같은 외형적 잣대로만 본다면 그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성단에는 유구한 역사의 혼이 깃들어 있다. 우리의 고대 사서인 환단고기에 의하면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께서는 재위 51년(기원전 2283년)에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강화도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고 3년 뒤에 친히 그곳에 행차하여 천제(天祭)를 올리셨다. 그 제천단이 바로 참성단이다.

단군왕검 이후 을지문덕, 연개소문 같은 영걸들도 매년 참성단에서 천지의 주인이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한마디로 참성단은 제천의 성소(聖所)로서 우리 국조와 열성조의 호국과 애민의 의지가 배어 있는 곳이다. 참성단에는 문화가 살아 있다. 참성단은 적석(積石), 즉 돌을 쌓아서 만든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유 건축양식이다. 고구려 성(城)을 적석성, 무덤을 적석총(돌무지무덤)이라고 하듯이 우리의 성(城)이나 제단, 무덤의 특징은 적석에 있다. 한마디로 적석문화는 우리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내몽고 지역에 있는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길게는 4000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중국은 이것을 자기네 조상들이 이룩한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굴된 제단, 신전, 무덤 이 모두가 황하문명에서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중국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다. 영토는 빼앗을 수 있어도 문화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참성단에는 한민족의 철학이 숨 쉬고 있다. 외형을 살펴보면 전체를 둘러싸듯이 만든 하단은 원형이고, 상단은 방형이다. 이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온 것인데 하늘의 정신은 둥글고 원만하며, 땅은 방정하다는 천지의 덕성을 나타낸다. 천원지방은 하늘과 땅을 만물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한 우리 조상들의 정신세계가 표출된 것이다. 이는 하늘을 만물의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여기는 천지부모 사상과 부합된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天子) 사상은 천지를 부모로 섬긴 우리의 고유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천제(天祭)는 천자만이 올릴 수 있었다.

그러기에 참성단은 고조선이 천자국(天子國)이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천자문화의 뿌리는 중국이 아닌 바로 조선이건만 우리는 사대주의 중화사관에 중독되어 그것을 망각한 채 살고 있다. 마리산의 참성단은 본래 우리가 누구였는지도 일깨워주고 있다. 참성단은 4300년의 역사를 함께해 온, 세계인에게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적이다. 국보 1호의 자격으로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혹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과 함께 참성단에 올라가서 이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감칠맛 나는 말로 풀어낼 수 있으면 그가 바로 진정한 한류의 전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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