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
>

[집중기획] '인권위 대전사무소' 늦출 수 없다

2013-05-28 기사
편집 2013-05-27 22:13:25

 

대전일보 > 사회 > 기획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장애인 권리호소 '천리 고행길'

"대전지역 장애인이 혼자서 서울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해 진정을 접수하고 상담을 받는 것은 엄두도 못낼 일입니다."

박흥기 대전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장은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회장은 당시 생명보험에 가입하려 했지만 장애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 당하면서 문제 의식을 함께 하는 전국의 장애단체 9곳과 함께 국가인권위를 방문, ‘보험회사의 장애인 보험 차별’ 시정을 촉구하고 집단 진정 53건을 제출했다. 2008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에게 보험 가입은 넘을 수 없는 차별의 벽으로 군림하는 데 따른 것이다.

보험가입 단계에서 ‘가입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보험가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보험가입시 불리한 조건을 제시해 스스로 보험가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 보험상품에 가입할 수 있지만 특정부위 부담보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 다른 보험회사에 문의해보라는 식으로 떠넘기는 경우, 객관적 근거나 구체적 설명 없이 심사단계에서 탈락했다고 통보하는 경우 등으로 다양한 거부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인권위로 향하는 발걸음은 험난하기만 했다.

뇌병변 장애로 휠체어를 사용하고 혼자서는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 이용조차 힘든 그가 대전에서 서울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일은 '결심' 자체가 모험이었다.

그는 "다른 단체들과 약속된 일이어서 오가는 어려움을 버텨냈지만 혼자서 진정서를 내는 일이었다면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라며 "대전에 인권사무소가 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과 부담을 지금도 수많은 지역의 장애인들이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의 부재로 인한 지역민의 ‘인권 소외’ 문제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크게 와 닿는 사안 중 하나다.

이동에 제약이 많고 인권 침해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다수인시설 생활자가 많은 데다 자신의 의사 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은 차별 등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해도 이를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외부에 드러내거나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또 관련 단체를 통해 인권위의 존재와 역할을 인지하고 진정을 신청하려 해도 지역 사무소가 없다 보니 인터넷 접수 밖에 통로가 없어 내용 전달에 한계를 느낀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진정 신청 이후 하나의 사건이 완료되기까지 통상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리지만 중간에 진행과정을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답답함도 호소하고 있다.

광주와 대구, 부산인권사무소 관할 지역민들은 사무소를 방문해 직접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상담하고 침해 여부를 판단받아 장애 문제를 제외하고는 지역사무소에서 직접 조사까지 챙기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대전지역에서 장애인 인권 문제를 상담하고 있는 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나 대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은 한 목소리로 "인권위 본부에 진정 신청을 해야 하는 과정이 어렵고 처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말한다.

지난해 대전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접수된 지적장애 1급 김모씨 사례의 경우 김씨는 30년 가까이 한 여성에 의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자신도 모르게 채무 5700여 만원까지 떠 안게 됐다. 그러나 경찰 조사 직전에 가해자에 의해 정신병원에 보내져 외부 기관의 개입이 힘들어지고 조사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경찰의 무혐의 처분과 인권위의 인권 침해 입증 어려움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바 있다. 이에 대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측은 의사 표현이 어려운 김씨와 같은 장애인의 특수성을 이해한다면 조사권을 지닌 인권위가 직접 현장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하지만 가해자와 함께 있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통해 접촉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문제가 크다고 지적한다. 지역 사무소가 즉각적으로 개입했다면 김씨의 경우 충분히 구제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지역 아동시설·사회복지법인들의 부실 운영과 인권 침해 문제도 인권위 지역사무소의 신속한 개입과 조사 기능이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지역에도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등 개별 영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인권 정책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인 만큼 지역사무소 한 곳의 기능이 이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며 "날로 증가하는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의 새로운 인권 침해 유형과 문제에 대처하고 지역민에 밀착된 인권 교육과 향상 정책을 벌이려면 지역 사무소 설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백운희 기자 sudo@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