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1936~)

- 새 / 신경림(1936~)

1.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순간, 몸에 붙은 것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새처럼 가벼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직장을 버리고 동료를 버린다.

집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아내를 버린다.

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버린다.

뱀 허물 벗듯 몸까지 벗어버리고 나서

마침내 당신은 새처럼 가벼워져

지하철역 입구에 나와 둥지를 틀고 앉았다.

당신의 손에 동전과 지전을 떨어트리는 사람들을

마주 보는 당신의 눈은 자비롭다.

2.

나도 가진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동료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몸까지 벗어버리고 가벼운 새가 되어

그래서, 당신처럼 지하철역 입구에 나와 앉지만,

내 때 묻은 손에 많은 다른 당신들이

동전과 지전을 떨어트리는 순간

나는 안다, 내가 버린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거짓과 허영을 하나씩 더 챙긴 채

나는 날개 부러진 무거운 새가 되어서

뒤뚱뒤뚱 당신 앞을 걸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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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다고 쉽게 말하지만, 이 말마저 욕심일 때가 많다. 비운다는 말을 함으로써, 비우는 것 같은 행동을 보임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성인군자처럼 보이려는 "거짓과 허영"의 경우가 하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는 본인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성인군자의 겉모습을 흉내 내기에 도취되는 동안, 정작 중요한 마음가짐의 점검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버린다"는 것은 "가진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어떤 목적을 두고서는 "버린다"는 것의 마지막 결과인 '가벼움'에 도달하지 못한다. "새가 되어"도 너무 무거운 새가 되어 날개를 펼치지도 못한 채 "뒤뚱뒤뚱" 우스운 모습으로 전락할 뿐이다. 예수님, 부처님이 성인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순수하게 모두 다 버린 채 "자비"의 "눈"으로 사람들을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리고 싶은 것들도, 그러기 위해 맺어야 하는 관계도 너무나 많은 세상, 누구나 한번쯤 "가진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홀가분하게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되는 것인데, 이 쉬운 말의 실천이 참으로 힘들다.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보다는 현실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깨우고 점검하는 일이야말로 '비움'의 가장 기본인 것이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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