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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핀 벨칸토 후계자

2013-05-22기사 편집 2013-05-21 22: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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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음악가 이야기 -벨리니

첨부사진1벨리니

가끔 어디선가 '벨칸토'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Bel Canto'란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으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창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모든 성악가는 아름답게 노래해 청중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이탈리아의 도니제티, 벨리니, 로시니의 벨칸토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낸다.

음악교과서에 자주 등장하고 애창하는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의 '아름다운 은빛 달(Vaga luna, che inargenti)'을 들을 때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써낼 수 있을까…. 마음 속 깊이 탄복하게 한다. 갸름한 얼굴과 넓은 이마, 지적으로 보이는 눈빛의 매력을 가진 벨리니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 1756-1791)와 공통점이 많다. 서른 다섯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부터 똑같으며, 그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더욱 비슷한 점이 많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잘츠부르크 교회당의 부악장이었으며, 궁정 전속 작곡자였다. 벨리니 역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나폴리 음악원 출신으로 고향에 돌아와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였으며, 아버지 로사리오 역시 작곡가, 음악교사,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일하였다.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벨리니 역시 어릴 적부터 시작하였다. 여섯 살에 작곡을 시작하여, 일곱 살 때부터는 할아버지의 지도 아래 많은 교회음악 작품을 발표하였다. 열여덟 살이 되어 벨리니의 할아버지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하였고, 벨리니는 고향을 떠나 나폴리 음악원에 입학한다. 스물한 살 때부터 벨리니는 음악원장 니콜라 칭가렐리에게서 나폴리 악파 거장들의 음악과 더불어 하이든과 모차르트, 페르골레시의 음악을 배웠다. 특히 모차르트 오페라에 반해 열정적으로 그 세계에 몰입했던 벨리니는 1824년에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공연을 보고 결정적으로 오페라 작곡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졸업 오페라 작품 '아델손과 살비니'의 성공적인 무대를 계기로, 1826년, 첫 번째 화려한 데뷔무대를 유서 깊은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오페라 '비앙카와 페르난도'를 공연한다. 그때 나이 고작 스물 여섯이었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로 나란히 꼽히는 로시니, 도니체티와 비교해 보면 벨리니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하다.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벨리니는 작품도 많지 않고 그 작품들이 로시니만큼 자주 공연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1835년 1월, 벨리니는 벨칸토의 걸작 '청교도 I Puritani'를 파리 공연의 큰 성공으로 "로시니를 계승하는 위대한 벨칸토 후계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갑작스런 급성 장염으로 파리 근교 퓌토의 시골집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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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