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선(1965~)

- 기억 / 조말선(1965~)

이 잉여물을 처리하기 위해

내가 애용하는 변기

몰래, 지저분한, 더러운, 당혹스러운, 코를 찌르는

따위를

처리하는 변기

이 잉여물의 잉여물이 알을 스는 밤

내 몸의 구멍이란 구멍마다

벌레가 우글거리고

구멍이란 구멍이

사각사각

넓혀질 때

손잡이를 힘껏 누르면

몰래, 지저분한, 더러운, 당혹스러운, 코를 찌르는

따위들이 탄성을 지르며 사라지고

수면 위 난처하게 떠 있는

나,

이 잉여물의 총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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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을 안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누구나 "몰래, 지저분한, 더러운, 당혹스러운, 코를 찌르는" 기억들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즐거운 기억으로 흐뭇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즐거운 기억보다는 좋지 않은 기억이 우리의 뇌를 장악할 때가 많다. 운동으로 단련을 해놓은 근육들이 잠깐 방심하는 사이 지방질로 바뀌어버리듯이, 부정적인 기억들은 순식간에 우리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하지만 기억은 인간에게 있어서 밥과도 같은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또 다른 기억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로 인해 우리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끼 두 끼의 기억은 술과 같은 망각제를 통해 거를 수 있지만, 계속해서 그 상태를 유지했다가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허약해져 버텨낼 수가 없을 것이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도, 기억들 뒤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도 그것들의 "총체성"인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억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소화시켜내느냐가 중요해진다. 독으로 약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내 몸의 구멍이란 구멍마다" "우글거리"던 "벌레"와 같은 기억도 생활을 반성하고, 좀 더 맑은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버린다고 다 버릴 수 없는 것, 이제는 "수면 위 난처하게 떠 있는/나"를 미래의 거름으로 이용할 방법들을 찾아보자.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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