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달리 법대로 하자는 경향 강해 가정 붕괴 가장 큰 사유는 경제적 문제

가정의 날을 맞아 손왕석 <사진> 대전가정법원장을 만난 것은 그의 범상치 않은 '이력과 경륜' 때문이다. 손 법원장은 우리나라의 '가사·소년 전문 법관' 1호이다. 2005년 제1기 전문 법관으로 선발돼 8년 째 서울가정법원과 대전법원에서 가사·소년 재판을 맡아오고 있다. 그동안 손 법원장이 다룬 이혼 소송은 줄잡아 2000여 건에 달한다. 소설 같은 실화와 막장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내밀한 부부의 사연과 분쟁을 들여다 보며 '이혼의 사회학'을 성찰해 왔다. 이혼 하려는 부부에게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하세요"라고 조언하는 손 법원장은 이혼 풍속도에 비친 세태를 냉철하게 꼬집으면서도 부부들이 다시 곱씹어야 할 금언과 규범을 담담하게 풀어 냈다.

가정법원의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이혼 청구인이 많아 주차장이 만차라며 정문에서 경비원이 일러 준다. 결국 주차장을 세 바퀴나 돌고 나서야 겨우 차를 댈 수 있었다. 법원 안의 소송 대기실은 오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기실 40여 석의 좌석은 빈 자리가 거의 없었고 대기실 밖의 복도에도 10여 명이 대기 중이었다. 예외 없이 부부들이고 이혼을 하려는 이들이다. 대기실 입구에서는 한 부부가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언성을 높여 다투고 있다. 체념의 감정이 이런 것일까, 그런 모습에도 사람들은 무신경하다. 남편들은 남편대로, 아내들은 아내대로 서로 시선을 달리한 채 무심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TV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가정의 날에도 이혼이 예외 없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낯설고 이혼 청구인이 많은 것이 다시 놀랍기도 하다.

손왕석 법원장의 저음의 맑고 굵은 음성에는 다정다감하면서도 은근한 위엄이 실린다. 인터뷰를 풀어 갈 때마다 정제된 메시지를 행간에 담아 냈다. 이혼 재판과 조정의 경험으로 축적된 이야기에는 생생한 풍경이 담겼고 철학적 성찰이 들어 있다. 무릎을 치게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이혼의 세태 변화가 그런 대목이다. "부끄러움이 사라졌어요. 예의나 염치가 완전히 실종된 거 같아요. 이혼 소송 과정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내세우는 주장이나 사실을 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로의 주장도 단순하고 직설적입니다. 과거에는 인정과 도리에 의해 판단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법대로 하자는 경향이 강합니다. 법치주의 측면에서는 좋은데 각박함이 느껴져요."

대정가정법원에는 한 해 5000건에 육박하는 협의이혼 청구가 접수된다. 2010년 4963건, 2011년 4831건, 지난해 4768건이 접수됐고 올해 들어 현재까지 2071건이 들어와 있다. 이 중 50-60% 정도가 이혼서류에 최종 도장을 찍는다. 소송을 하는 경우는 협의이혼보다는 적지만 해마다 늘고 있다. 2010년 1991건, 2011년 2076건, 지난해 2342건의 재판이 진행됐고 올해 들어서는 1194건으로 지난해보다 증가 속도가 빠르다. 예전보다 '법대로 하자'는 경향이 강해지는 탓이다. 이혼의 풍속도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손 법원장은 "애정이 없어지고 참지를 않는다"고 꼬집는다. 희생과 양보의 미덕은 옛날의 모습이라고 한다.

손 법원장은 특히 여성들의 변화에 방점을 뒀다. "여성들의 경우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요. '이혼을 하고 싶어도 자식들을 위해 참고 살아야지'라는 희생과 양보 대신에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기보다는 오늘 나의 청춘을 빛나게 살고 싶다'라는 것이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손 법원장은 이혼의 사유는 경제적인 것이 가장 크다고 설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바람을 피우더라도 경제적인 여건이 되면 참고 살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가정에 충실하지 않으면 바로 이혼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11년 대전·충남북의 이혼 건수는 총 1만1561건으로 이중 11.0%인 1268건이 경제 문제가 이유였다. 같은 해 직업별 이혼 건수를 보면 남편이 무직인 경우가 769건으로, 전체(3067건)의 25.1%로 가장 많았다. 경제 문제가 가정 붕괴를 부추기는 가장 두드러진 요인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과연 이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이혼을 하려는 부부들이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고 곱씹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손 법원장은 "남편이든 아내이든 잘못을 한 사람이 솔직하게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맞서게 되면 그동안 묻어 두었던 일들까지 죄다 드러나게 되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솔직한 태도와 진지하게 변화는 모습과 의지를 상대방이 확인하게 되면 새로운 신뢰 형성이 가능하다는 경험론적 설명이다.

손 법원장은 이 대목에서 이혼 조정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혼 조정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의외로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이혼 상담은 이혼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이혼을 하려는 사람의 갈등을 해소하고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것이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10건 중 1건은 이혼을 안할 수가 있어요." 손 법원장은 가끔 씩 주례를 설 때마다 신랑신부에 강조하는 금언이 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는 '신뢰와 배려'를 꼽고 그 다음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이 되라'는 세 번째 항목은 유독 공감이 실린다.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어른이 돼야 합니다. 자기 집안의 일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친정이나 본가에 의존하거나 부부 간의 갈등을 부모에게 이르는 경우가 요즘 젊은 세대에는 많은데 그 것은 머리나 심장이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부모가 부추겨서 하는 이혼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최근 가정법원은 단순히 이혼 청구를 처리하거나 재판을 진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조정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혼이 가져오는 후유증과 악순환을 완화하기 위한 취지다. 특히 자녀의 '이혼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에 다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점에 주목해 나온 개념이 '후견적 복지 기능'이고 손 법원장이 가사·소년 전문 법관으로서 가장 주력하는 분야이다. 손 법원장은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홧김에 이혼하지 말고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하세요." -시리즈 끝-

이용 기자 yong@daejonilbo.com

△손왕석 법원장은 누구

경남 밀양 출생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인문대를 나와 사법연수원 17기를 수료한 뒤 대전지법 판사로 첫 발을 디뎠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인천지법, 서울지법과 고법 등의 판사를 거쳐 대전지법 부장판사, 대전지법 공주지원 부장판사 등을 지내며 17년 간 민·형사 재판을 맡아왔다. 2005년 가사·소년 전문 법관 1호로 선발된 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와 수석부장판사를 지냈으며 지난 2월에 대전가정법원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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