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예술기행-앙소르
브뤼셀의 미술학교를 자퇴하고 인상파적 젊은 예술가 그룹인 20인조(Les XX)를 부흥시켰다. 초기에는 드가, 고흐, 터너의 영향을 받았으나 1883년경부터는 선배인 보스·브뤼겔을 연상케 하는 환상·괴기·풍자의 방향으로 바뀌었다. 1887년경부터 박해받는 구세주 등의 전통적인 제재를 벗어나 가면, 해골, 망령 등을 통해 독자적인 생, 사, 인간의 우매함을 묘사했다.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인정을 받지 못한 그의 작품은 오늘날 표현주의의 직접적인 선구자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1890년대를 정점으로 급속히 활력을 잃었다.
그는 주변에서 지나치게 과민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음산하고 소름이 돋는 듯한 그림은 당대 화풍과는 거리가 멀어 출품을 거부도 당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현란한 색채로 표출하였고 화풍은 환상적이면서 괴기스럽고 또 매우 풍자적이다. 그는 급격한 산업화에 반대하여 순수한 사회를 동경했으나, 89살에 세상을 떠났다.
가면이 있는 자화상(Ensor with Masks, oil on canvas, 120x80cm, 1899)에서 빨간 깃털 모자를 쓴 그는 무서운 가면들 속에 포위돼 있다. 그림에 나오는 가면들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림 속 가면은 화가를 괴롭히는 인간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비웃으며 쳐다보는 가면들에 갇힌 화가는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의 그림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어떤 핍박을 받더라도 인간의 얼굴 뒤에 숨은 가면을 낱낱이 까발리고 말겠다는 그의 고집불통 의지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가면은 살아 있는 인간보다 표정이 풍부하다.
반면 해골 형상은 전통적으로 시간의 유한성과 어리석은 인간을 상징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면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상을 향한 적대감과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냈으며, 또 기만과 위선, 인간의 허영심과 비겁함을 꼬집었다. `가면을 쓴 인간은 그 가면의 특성을 띤다`는 말대로, 그들은 이미 가면을 벗을 수 없게 된 자들, 가면에 지배를 받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세천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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