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길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깝다. 불교계에서는 보통 이 한 주 동안을 불교도 주간으로 선포하고 부처님 오신 날을 함께 기뻐하고 즐기는 축제 기간으로 삼는다.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서 축제를 즐기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래된 관습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불교도들은 사찰을 찾아 각자 등(燈)을 켜는데, 그 등(燈)에 여러 가지 바람들을 담는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내 가족이 건강하고 복되기를, 이 사회에 그늘진 자리가 다 사라지기를,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로 다가오기를.

등을 켜는 본래의 의미는, 내 앞에 켠 등으로 인해 나의 주변에 있는 어둠이 사라지듯, 내 앞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지혜로 인해 내 어리석음이 사라지게 해달라는 것이다. 또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 역시 내가 켠 밝은 등불 덕분에 곤경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이루라는 의미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등(燈)을 주고받던 축제의 역사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도 이미 2000년에 가깝다.

그런데 불교도야 그렇다지만, 왜 옛날 동아시아 사람들은 연등회를 개최하고 전 사회적으로 축제마당을 펼쳤던 것일까. 여기에는 요즘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임금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백 중 구십 명은 요임금과 순임금을 꼽는다. 이른바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인군자의 반열에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받은 신라 사람이나 고려 사람이라면, 아니 조선 초를 살던 사람이라면, 태반은 아육왕(阿育王)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육왕은 인도 역사에서 아소카 왕이라고도 불리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약 100년이 지났을 때 등장하여, 인도 전역을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제국의 왕이다. 중국으로 치면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했던 진시황에 해당하는 통치자이다. 아소카 왕도 진시황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살육이 자행된 전쟁의 비극을 겪은 왕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참한 전쟁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한 후 두 통치자의 길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진시황은 통일제국 진을 건설한 뒤 엄격한 법치주의에 근거하여 철권통치를 시행했다. 반면 비슷한 규모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아소카 왕은 통일제국 마우리아를 건설하기는 했지만, 통일전쟁 동안 자행한 살육을 반성하고 관용과 화해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아소카 왕이 전쟁의 참화를 반성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후에 시행했던 복지정책이 그 기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아소카 왕은, 그 가르침을 사회복지정책으로 구현했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아소카 왕을 전륜성왕의 화신이라 부르고, 세속 통치자의 모범으로 칭송한다. 아소카 왕의 통치정신은 석주(石柱)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하는데, 다음 한 구절은 그 통치정신을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내 아들이다. 나는 나의 왕자들이 현세에 피안의 이익과 안락을 얻기를 바라듯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것을 바란다."

내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듯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 정신에서 나오는 통치, 이것이 아소카 왕이 꿈꾸었던 정치였다.

불교가 동아시아 사회에 전해진 후, 중국이나 한국의 통치자들은 아소카 왕의 정치를 모범으로 삼아 통치자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소카 왕을 닮으면 닮을수록 백성들의 삶은 조금이라도 더 안락해질 수 있었다. 아소카 왕이 1000년이 넘도록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부처님 오신 날이 기꺼워 즐기는 축제가 된 것도 모두 그런 정책들로 인해 사람들의 안락과 행복이 조금이라도 더해졌기 때문이다. 종교의 가르침이 훌륭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종교의 가르침이 훌륭한 것만큼이나, 종교인의 마음 씀씀이며 행동도 훌륭해야 한다. 종교적 이상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현실세계의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안락하게 하는 종교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 종교를 기꺼워하고 즐기겠는가. 종교가 훌륭해지는 것보다, 그 종교로 인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락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훨씬 더 기뻐할 일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 가슴에 그것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래야 즐거울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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