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공교육·교권침해 교사 사기 떨어져 경쟁에 지친 아이들 스트레스 분노로 표출

대전 한 중학교 A교사(39)는 지난해 황당한 일을 겪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성 서너 명이 교무실에 불쑥 찾아 온 것. 이 남성들은 A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을 거론하면서 "왜 OOO를 때리고 차별을 하느냐"며 따졌다고 한다. A교사는 이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당시 겪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선후배 교사들 중 일부가 `이와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며 씁쓸해 했다.

학교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매 맞고 욕 듣는 교사들을 심심찮게 듣는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방증으로, 학교 현장에선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교총이 지난 3월 조사한 `2012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교권침해 건수는 335건. 1991년(22건)에 비해 11년 사이 15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한국교총에 접수된 사례일 뿐, 학교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은 교권침해는 더 심각하다고 교육계는 보고 있다.

한남대 배천웅 교수(교육학과)는 "교사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진정으로 한국의 무너진 공교육을 걱정하고 바로 세우려면 교사의 사기와 열정을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교문 밖에서 바라보는 교육이 우려된다"는 얘기는 사회 곳곳에서 나온다. 교권침해를 당하는 교사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피로를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전의 또 다른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인성(가명·16)이는 초등 4학년 때 경기도에서 대전으로 전학 온 후부터 계속되는 따돌림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분노감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고, 괴롭힘을 당하다 쌓인 분노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폭력을 쓰는 등 폭발했다. 결국 괴롭혔던 상대 가해학생이 피해자가 되고 인성이는 가해자가 된 상황에서 지난해 대전교육청 Wee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 교사는 "인성이가 상담을 의뢰할 당시 낮은 자존감과 어른들에 대한 불신감, 내재된 분노감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초등 입학 전부터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정해진 교육을 받아내야 한다. 선행학습으로 미리 배우는 것도 모자라 재능을 찾겠다며 각종 학원을 맴돈다.

한국 사회에서 중·고교로 올라갈수록 결코 어색하지 않은 단어는 또 있다. 바로 `입시와 야자`다. 특히 입시는 블랙홀과 같은 장력을 지닌다.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고자 기대하는 서민과 빈민계층의 자녀들에게는 입시가 그나마 가능한 신분 획득 수단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나 갈수록 낙타의 바늘구멍이 돼 가고 있는 게 현실. 학생들은 삶을 회복하는 교육이 아닌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 위주 교육체제에서 끊임없이 경쟁을 한다.

지난 200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각국의 통계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아동·청소년 생활 패턴 국제 비교분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은 평일 하루 평균 7시간 50분을 공부에 쏟아 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영국 아이들의 2배가 넘는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는 것.

수면 시간은 조사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적었고, 사교육에 들이는 시간은 가장 많았다. 전교조 대전지부가 이달 초 관내 초·중·고 10개 학교 20개 학급 총 662명을 대상으로 벌인 `학생 학교생활 실태 설문조사`에서는 "학생들이 더 이상 교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조사 결과 `고민을 선생님에게 말하겠다`는 학생은 초등학생 9.8%, 중학생 2.6%, 고등학생 1.5%에 불과했다. 학생 10명 중 9명 이상이 교사와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학교컨설팅연구회 송명석 이사는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망각하고 오로지 경쟁과 편법만을 조장하는 지금의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을 교육이라 말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학교는 갈수록 무너져 가고 있는데, 교사들이 무얼 바꿀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 학교(기존 공교육 시스템)를 죽여야 학교가 산다"고 덧붙였다.

최태영 기자 tychoi@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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