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옥(1950~)

- 등성이에서 / 한영옥(1950~)

그저께도 가고

어저께도 가고

어저께보다는

그저께가 가까워졌다

한 주일 전 쯤 보낸 사람

돌아오는 기미 뽀얗다

생강나무 꽃 먼저 떨어지고

함박꽃 조금 있다가 떨어졌다

생강 꽃 돌아오는

노란 아지랑이로

저기 돌아오는 노란 이마

함박꽃 돌아오는

함박 함박 눈짓으로

저기 돌아오는 붉은 눈시울

얼추

천년이면 다들 돌아와

또 반가운 형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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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지금 윤회의 시간 속 어느 "등성이"에 서 있다. "등성이"의 높이에서 바라보니 산 아래 세상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대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별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좁은 시야가 트이면서, 그것은 결국 만남의 시작임을 알게 되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오르고 내려오는 일의 순환이 인간 삶이라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헤어짐과 만남도 마찬가지로 원을 그리며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저께보다는/그저께가 가까워졌다"라는 말도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에서 돌아오는 것들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감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생강 꽃"이 "노란 아지랑이로", "함박꽃"이 "함박 함박 눈짓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것들은 다른 대상의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마음으로 다가선다. 다시 말해 시인은 "아지랑이" 속에서 "노란 이마"의 "생강 꽃"을, 그리고 무엇인가의 "눈짓" 속에서 "붉은 눈시울"의 "함박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보낸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함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하여튼 윤회의 시간 속에서 "형상"을 바꾸며 태어나는 존재들의 전생을 보는 시각을 통해, 시인은 결국 떠나보낸 것들이 모두 돌아올 것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 앞에서라면 "천년"이라는 시간도 시인의 기다림을 꺾지 못할 것이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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