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위해 대학 포기한 주인공 日 여행서 문어빵 매력 빠져

 풀빵이 어때서?김학찬 지음·창비·200쪽·1만1000원
풀빵이 어때서?김학찬 지음·창비·200쪽·1만1000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아버님의 일을 잇고 있습니다. 아버님도 아직 일선에서 활약 중이시구요.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정도는 됩니다."

남자의 자기소개에 순간 소개팅녀의 눈빛이 180도 변한다. 초라한 남자의 행색에 영 마뜩찮은 눈빛을 보내던 그녀의 눈에 '다이아몬드가 둥둥' 떠다녔다. 눈을 반짝이는 여자를 보며 남자가 '가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슬쩍 냄새만 풍길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런 내 이야기가 상대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제왕교육의 일부였다'(9쪽)고 생각하고 있을 찰나 방금까지 한숨을 뿜던 여자는 초라한 남자의 의상을 '검소하다'고 칭찬하며 가업에 대해 더 알고싶다고 말한다. 한껏 콧대세운 남자와 기대에 찬 여자의 대화가 이어진다.

"외식업입니다. 유통도 약간, 아주 약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럼 롯데나 씨제이 같은 건가요?" "타꼬야끼를 굽지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더이상 눈에 다이아몬드가 둥둥 떠다니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이다.

시작부터 웃음이 터져나오는 소설 '풀빵이 어때서?'는 붕어빵의 달인 아버지와 타꼬야끼 장인을 꿈꾸는 아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어릴적 부터 가업(붕어빵)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도 갈 실력이었지만 붕어빵을 위해 포기했다. 국어시간엔 '붕어빵 구울 무렵'이라는 상호를 생각했고 물리시간엔 붕어빵의 열량을 계산했다. 이랬던 그가 타꼬야끼로 '외도'를 하게 된 것은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다. 관심사병으로 찍힌 그는 2년 내내 부대 간식용 붕어빵을 구웠다. 피는 못속인다고 붕어빵을 어찌나 잘 구웠는지 장교들이 헬기까지 타고 찾아올 정도였다. 덕분에 붕어빵을 원없이 구운 그는 천복이라 믿었던 것에 미련없이 이별을 고했다. 그후 떠난 일본 여행에서 운명처럼 타꼬야끼를 만난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는데, 문어빵에 문어가 있다니!

소설은 뻔뻔한 말장난과 맛깔나는 묘사로 가득하다. 재치있는 발상 속 현실에 대한 진중한 고찰도 숨어있다. 야들야들한 반죽에 든든하게 자리잡은 문어다리 처럼.

주인공의 아버지는 한꺼번에 여러개의 붕어빵을 구우면서도 보는 사람이 '이거 완전 붕어빵이네!'할 정도로 똑같은 모양 속에 공평한 앙금을 넣었다. 달인을 넘어 명인이다. 그런 아버지인 만큼 아들의 '외도' 선언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이 돌잡이 때 다른걸 잡을라 치면 은근히 옆으로 밀어내 결국 붕어빵긁개를 잡게했던 아버지였다.

"아들아, 붕어빵은 여전히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와 붕어빵은 너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 어서 귀순하거라."(34쪽)

"붕어빵이나 타꼬야끼나 하다못해 바나나빵도 다 근본은 같은 풀빵이라구요. … 아버지 손님들한테 물어보면 되겠네요."

"같은 풀빵이라고 답하는 근본없는 손님은 안 받는다."(43쪽)

소설은 아버지가 끊임없이 아들에게 가업을 이을 것을 권하고 아들은 타꼬야끼를 향한 순정을 고수하면서 점점 갈등 국면으로 치닫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유쾌하기만 하다. 작가의 재치있는 입담이 흡입력있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렇다고 소설이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풀빵이라는 소재안에 가족애와 사회문제를 매끄럽게 엮어냈다.

주인공은 당당하게 '가업'을 잇겠다며 입시를 포기했다. 아니 거부했다. 청춘을 다바쳐 공부하고 대학에 가도 취업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겨우 그 벽을 넘어도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자리에 안착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회적 성공의 잣대를 당당히 거부하는 주인공은 '자발적 비정규직'을 외치는 절대 갑(甲) '미스김' 못지않다.

아버지의 '길거리 음식 철학'은 골목상권에 군침 흘리는 대기업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아무리 백화점이라도 그렇지 손댈 게 있고 손대지 않을 게 있건만. … 자고로 길거리 음식은 서민음식이어야 해. 값싸고 속 든든하게 해주는 게 길거리음식의 책무야. 쓸데없이 고급화하는 건 서민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거지."(14쪽)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확고한 아버지인 만큼 주인공과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부자간의 논쟁을 통해 세대간 이질적인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인공이 아무리 타꼬야끼의 장점과 장인 정신을 이야기해도 아버지는 '왜놈 풀빵'이니 음식위에 '대팻밥(가쓰오부시)'을 얹는 다느니 하며 아들의 꿈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설이 태연한 말장난을 이어가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이러한 뼈있는 고찰 때문이다.

붕어빵이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한 남자의 인생과 가슴아픈 가족사, 세대간의 갈등과 한일간 문화차이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낸 것도 놀랍지만 유머와 사회의식의 균형을 고르게 잡아 흔들림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한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 중반부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결혼 타령이 '부부가 같이 굽는 붕어빵'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잠시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의 마음 짠한 감동으로 만회했다.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음은 물론이다. 책을 덮고나면 달콤한 팥 앙금이 가득 든 풀빵을 입안 가득 넣고있는 것 처럼 마음이 훈훈해 진다.

최진실 기자 choitruth@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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