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 되돌아본 40년-세계를 놀라게 한 대덕의 기술] ⑪ 한국천문연구원

연세대학교에 설치된 전파망원경. 사진=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연세대학교에 설치된 전파망원경. 사진=한국천문연구원 제공
한국천문연구원(원장 박필호)은 지난 2011년 우주전파를 4개 채널(22, 43, 86, 129㎓)에서 동시에 관측하는 시스템 개발에 성공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파망원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눈으로 직접 하늘, 천체를 관측하는 광학망원경과 달리 우주의 전파를 수신하는 것이다. 기존 22㎓나 43㎓를 관측하는데 머물러 있던 우주전파 수신기술의 한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쾌거였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Korean VLBI Network)=우주전파 수신기술 개발은 한국우주전파관측망 구축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천문연구원은 2000년대 초. 직경이 21m인 전파망원경을 통합시스템으로 운영해 지름이 500㎞에 달하는 거대한 전파망원경의 성능을 구현하기 위한 전파관측 네트워크 구축계획을 세운다. 이게 바로 한국우주전파관측망 프로젝트다. 성공하면 정밀한 천문 관측은 물론 측지나 지구물리 등 다른 과학분야의 연구를 위한 국가기반시설로 자리매김 하게 될 중요한 기술이었다.

연세대학교와 울산대학교, 제주 탐라대학교에 직경 21m 우주전파망원경을 설치하고 3개의 관측망을 연결하기로 한다. 관건은 우주전파를 수신하기 위한 시스템이 전제되는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나라들이 이미 전파관측을 시작했지만 22㎓와 43㎓ 전파를 관측하는 데 그치며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천문연은 타 연구 선진국의 성과를 뛰어넘기 위해 기존보다 더 높은 고주파영역인 86㎓, 129 ㎓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정한다.

◇왜 초고주파 관측인가=초고주파 우주전파를 관측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전파가 대기를 거치면서 변하는 `감쇄현상` 때문이다. 주파수가 낮으면 그래도 감쇄현상이 적어 22㎓나 43㎓는 감쇄현상이 미약했다. 대기에 흡수되는 양이 매우 적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고주파수대로 갈수록 감쇄가 심해졌다. 감쇄가 적은 22㎓의 관측정보를 바탕으로 나머지 관측결과에 보정을 하는 등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천문연이 이렇게까지 초고주파 관측에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전파의 단위로 ㎐(헤르츠)를 사용하는데 1㎐는 1초 동안 1번 파동이 있다는 뜻이다. 1㎓는 파동이 1초 동안 10억 번 진동하는데 그만큼 천체에서 방출되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고 다른 주파수 영역보다 상대적으로 신호의 세기가 강한 영역이기도 하다.

◇저주파와 고주파를 나누는 필터를 만들자=천문연은 2003년 4월 연구소 내 세미나에서 4채널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특정 주파수를 걸러주는 필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전파망원경 수신부에 필터를 여러 개 설치해 낮은 주파수의 필터를 걸러내다 보면 각각의 주파수를 관측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물론 기존에도 각각의 주파수를 나누어 관측하면 감쇄와 관계없이 동시에 관측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이 방법을 찾지 않으면 한국전파망원경시스템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4채널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기술이었다. 연구소 내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관건은 낮은 주파수와 높은 주파수를 걸러주는 이 `로우 패스 필터(low pass filter)`를 어떻게 만드는가였다.

세계 각국의 관련 연구자에게 메일을 통해 개념을 설명하고 반응을 알아봤더니 역시나 하나 같이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같은 분야의 권위자에게 자문을 구한 끝에 로우 패스 필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필터 제작에 노하우가 쌓인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 대학에 실제 설계를 문의했는데 기존 주파수보다 훨씬 고주파영역인 적외선 영역에 적용해 본적은 있지만 수십 ㎓대에서 해본 적이 없어 성공확률은 반반이라고 했다. 고민은 많았지만 결국 낮은 주파수는 통과시키고 높은 주파수는 반사하는 개념의 필터를 설계하고 3억 6000만원을 들여 제작을 맡겼다. 예산도 적지 않았지만 만약 실패하면 전파망원경안의 수신기 구조를 전부 바꿔야 할 수 있고 한국형 전파망원경시스템 구축 시기도 지연되는 고비였다.

◇감격적인 4채널 동시관측 성공=실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2007년 연세대학교 전파망원경에 설치를 시작했다. 필터는 구리와 유전체로 만든 필터는 직경 30㎝ 정도의 잘못 건드리면 깨질 정도로 얇은 원형이었다. 망원경 1기에 필요한 필터는 3개, 3기의 망원경에 설치하기 위한 필터 9개와 여분까지 모두 12개의 필터를 반복 실험했다. 드디어 2009년 10월. 22㎓와 43㎓ 두 채널을 동시에 관측하는 데 성공한다. 전파망원경 아래 수신기 관측실에서 5명의 연구자가 모여 앉아 신호가 감지되는 화면을 보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후 같은 원리로 4채널 모두 관측에 성공하기까지 다시 3년 반이 걸렸다. 천문연은 4채널 우주전파 동시관측 시스템에 성공한 공로로 지난 2011년 11월 대한민국 과학기술 창의상을 받았다. 천문연구 분야에서 기술을 토대로 상을 받고 특허까지 출원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연구원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정연 기자 pen@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4채널 우주전파 동시관측 수신기의 내부 모습. 사진=한국천문연구원 제공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4채널 우주전파 동시관측 수신기의 내부 모습. 사진=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오정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