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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속 피어난 표제음악 거장

2013-05-08기사 편집 2013-05-07 21: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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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음악가 이야기 -베를리오즈

첨부사진1베를리오즈

베를리오즈(Louis-Hector Berlioz, 1803-1869)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친구로 지냈던 페르디난트 힐러(Ferdinand Hiller, 1811-1885)는 그의 저서 '예술가의 삶'에서 특이하고 흥미진진한 음악가 베를리오즈에 대한 회상을 기록하고 있다.

'베를리오즈를 만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얼굴의 비상한 표정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중략) 한번이라도 그를 목격한 사람은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기묘하게 생기가 있었다. 두 눈은 진짜로 불타는 듯 번쩍거리다가도 갑자기 멍하게 광채가 사라지며 빛과 어둠이 교대로 나타나곤 하였다. 입은 정력이 넘치는 표정에서부터 극도의 경멸감에 이르기까지, 또한 가장 우호적인 미소에서부터 신랄한 조소(嘲笑)에 이르기까지 실로 변화무쌍하게 표정이 움직였다. 그는 중간 정도의 키에 날씬하였지만 우아하지는 않았으며 그의 외양(外樣)은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의 생김이었다.'

베를리오즈의 '고백록'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한 페르디난트 힐러는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베토벤의 제5번 피아노 협주곡인 '황제'를 초연한 명연주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훔멜의 제자이기도 하였으며 리스트에게도 잠시 레슨을 받았다. 쇼팽과 멘델스존 등 많은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가들과 가까운 친구로 지냈지만, 후년에는 표제음악을 지지하던 리스트, 바그너의 반대파인 절대음악의 편에 섰다.

페르디난트 힐러는 1829년에 처음으로 베를리오즈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의 베를리오즈는 부친이 권하던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가난한 음악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던 시기였다. 베를리오즈는 비록 여덟 살이나 어린 친구였지만, 페르디난트 힐러에게 고향인 코테 생 앙드레에서의 이야기와 의학 수업에서 겪었던 병원 실습과 해부실에서의 경험담을 털어놓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1830년 7월 파리에서 일어난 부르주아 혁명 바로 뒤인 12월 5일, 파리에서 그의 작품 '환상교향곡'이 공연되자마자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시골 출신의 한 청년은 돌연 모든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었으며, 음악계에서도 많은 저명인사들에 대한 화제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베를리오즈는 서양음악사의 한 단락(段落)에 등장하는 표제음악을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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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