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의 지구사 콜린 테일러 센 지음·강경이 옮김·휴머니스트 256쪽·1만5000원

양파를 기름에 볶다가 고기나 생선을 넣고 물이나 육수, 토마토,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인 다음 밥과 함께 곁들여 낸다. 이것은 어떤 음식의 조리법일까. 정답은? 커리다. 분명 익숙한 요리지만 조리법만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럼 이 요리는 어떤가. 감자, 당근 등 채소를 깍둑 썰기 하여 볶다가 비슷한 크기로 썬 고기를 넣고 고기가 어느정도 익으면 물을 넣고 끓인다. 재료가 거의 다 익었을 때 쯤 강황이 섞인 노란 가루를 물에 개어 재료와 섞어 끓인 뒤 밥과 함께 곁들여 낸다. 정답은? 카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의 요리는 고전적인 방식의 앵글로-인도인식 커리, 뒷 요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카레라이스'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커리는 인도 음식이다. 하지만 영국의 외무부 장관을 지낸 로빈 쿡이 "치킨티카 마살라(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커리 요리)야 말로 진정한 국민음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요리기도 하다. 일본인의 흔한 가정식 요리에 뽑힐 만큼 일본에서도 인기있는 음식이며 한국에서는 대표 캠핑요리로 자리잡았다. '세계인의 음식'으로 불릴만 하다.

'커리의 지구사'는 인도에서 탄생한 커리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게된 역사적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희귀한 동양의 스튜'로 불리던 음식이 어떻게 건너간 나라마다 '국민요리'가 됐을까. 경로는 크게 두갈래다.영국 출신의 식민지 정착민들이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요리책을 가져가면서 영어권 국가로 퍼진 것과 19세기 초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남아프리카,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피지 등의 농장으로 해방된 노예들을 대신해 대거 이주한 인도 계약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음식 문화를 가져가면서 뿌리내린 것이다. 커리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된 것도 이때문이다. 이주 노동자들이 그 지역의 식재료로 커리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토착 음식화 됐다. 매콤한 커리 안에는 인도인의 매운 눈물의 역사가 숨어있는 셈이다.

영국은 인도를 지배했지만, 식탁의 권력은 그 반대였다. 영국인들은 그 자극적인 맛에 푹 빠졌고 커리는 당당히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콧대 높은 영국인들이 '식민지 음식'인 눈물이 쏙 빠지게 매운 빈달루를 먹으며 맥주를 어마어마하게 마시는 것을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한국에는 일본을 통해 커리가 들어왔다. 인도 음식이지만 서양 음식점에서 판매되면서 양식으로 인식됐으며 모던보이와 모던걸에게 인기를 끌면서 카레라이스가 근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제시대 고급 음식에 속했던 카레는 인스턴트가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대중화 되었다. 인스턴트 카레는 짧은 조리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정작 인도인들은 커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한다. 물론 요즘은 그레이비(육즙으로 만든 소스)로 만든 모든 가정식을 커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통적으로는 음식마다 코르마, 로감 조시, 빈달루 등 특정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 남부 지방에서는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요리를 '카릴' 또는 '카리'로 불렀는데 영국인들이 이것을 '커리'라고 부른 것에 유래해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책은 커리의 역사를 추적하며 중간중간 인도의 요리 이야기를 곁들인다. 쌀과 고기를 넣어 정성껏 볶은 플라우와 비르야니, 페이스트리에 고기나 채소로 속을 채운 사모사, 양파와 함께 천천히 익힌 고기 요리인 도피아자, 밀반죽을 여러 겹으로 동글게 말아 기름에 튀겨 설탕시럽에 담근 잘레비….(34쪽) 커리를 따라 등장하는 인도요리는 단 몇줄의 설명 뿐이지만 읽다 보면 군침이 넘어간다. 거기다 각장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커리요리의 사진까지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배가 고파진다. 매콤한 커리의 맛이 느껴지는 책이다. 책의 말미에는 정통 커리 요리법이 소개되어있지만 책을 읽다 배고파진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찬장에 생후추, 커민 씨, 정향, 양고기 따위가 구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림의 떡 아니, 책 속의 커리다. 향신료와 양고기가 든 커리보다 3분만에 요리되는 카레가 훨씬 더 익숙한 것을 보면 커리와 카레는 엄연히 다르다는 저자의 주장이 납득이 간다. 최진실 기자 choitruth@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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