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 70% 가정불화 경험 모든 범죄 시발점

`칼로 물 베기`, `집안 내부의 일`이라는 인식에 갇혀 남몰래 마음의 병을 키우는 이들이 있다. 한 해에만 368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정 폭력 피해자들이다.

가정 폭력은 엄연히 폭행죄에 속하는 범죄 행위임에도 개인 간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선정적 이슈로 다뤄지면서 급기야 지난 2011년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아내 수가 69명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최근에는 가정 폭력이 학교 폭력과 강도, 강간 등 각종 강력범죄의 근간에 자리한다는 일련의 연구가 더해지면서 가정폭력 문제를 가정 밖으로 끌어내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가정 폭력은 부모, 배우자, 자식, 형제자매, 친척,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신체적 학대는 물론 언어, 정신, 성적 학대와 경제적 고립 및 방관, 무관심, 사회적 격리 등의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된다.

이모씨의 경우 시어머니의 반대를 뚫고 힘겹게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남편에게 2억 원의 숨겨둔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에 근처에 사는 시부모는 시도 때도 없이 신혼 집에 들이닥쳐 이씨의 살림 방식을 나무라며 간섭했다. 경제적 압박과 시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요구한 이씨에게 남편은 "결혼했으니 빚은 공동의 몫"이라며 "처가 집이 잘 사니 돈을 가져오라"고 대응했다. 나아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이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전치 6주의 상해까지 입혔다. 결국 이를 알게된 이씨 친정 가족의 개입으로 이혼 을 위해 법원을 찾은 부부는 법원측이 의뢰로 상담을 받게 됐다. 상담사는 남편에게 거주지를 부모와 분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결정권을 독립하는 등의 경계 세우기를 제시했고 다행히 과거 부모의 반대를 극복할 정도로 애정이 두터웠던 부부는 상담을 지속하며 조금씩 폭력 문제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처럼 가정폭력의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 20011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통계를 보면 남편이 아내를 향한 가정 폭력이 81.9%를 차지했고, 흉기 사용도 전년 13.3%에서 25.5%로 두배 가까이 증가해 심각성이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부부 폭력을 경험해도 외부와 공적 체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2010년 여성가족부의 `전국 가정 폭력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 3800여 가구 중 부부 폭력 경험 비율은 53.8%에 달했지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5.8%에 그쳤다. 폭력 피해자들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집안일이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 `배우자를 신고할 수 없어서`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조기에 차단하지 않으면 장기간 지속되고 더 큰 폭력을 부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나아가 가정 폭력은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악순환을 보인다.

최근에는 이른바 홈메이드 크리미널(Home Made Criminal)이라는 개념이 등장,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의 70% 가까이는 가정 불화가 빚은 범죄자로 이들 중 가정 내 직접 폭력 경험자는 35%, 부모의 이혼·외도·학대·알코올 중독 경험자가 66.7%라는 조사가 나왔다. 특히 부모의 부부 폭력을 경험한 자녀는 41.2%가 똑같이 배우자를 구타한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김병곤 가톨릭 가정 폭력 상담소 상담사는 "가정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 받을 수 있는 만큼 경찰 등 공적 영역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며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북한 이탈 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가정 폭력에 대한 공공 개입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운희 기자 sudo@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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