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경제 급성장 동시에 산아제한

 남성과잉사회 마라 비슨달 지음·박우정 옮김 현암사·404쪽·1만8000원
남성과잉사회 마라 비슨달 지음·박우정 옮김 현암사·404쪽·1만8000원
"남자(혹은 여자)가 그 녀석 하나뿐이냐? 세상에 반이 남자(혹은 여자)야. 잊어버리고 기운 내."

많은 사람들은 흔히 연애에 상처받은 이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상심한 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건네는 이 말 속에는 우리의 성비에 대한 관념이 잠재되어 있다. 여성과 남성이 비슷한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면 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문제의 소지가 없는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졌다. 적어도 인간이 생식(生殖)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출생률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인구통계학자들은 자연적인 인간의 출생비가 여아 100명 당 평균 105명의 남아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 환경과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인간의 자연적인 출생 성비로 받아들여 졌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성비불균형이 우려된다고 해석됐다.

아시아에 정통한 미국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생생한 현장 취재와 인터뷰,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중국, 인도, 아제르바이잔 등 성비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나라에 도래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1980년대에 이미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 일부 지역의 출생성비는 109를 넘어섰고, 인도는 112, 중국은 120에 다다랐다. 특정 지역에서는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였는데, 중국 장쑤성 롄윈강의 5세 이하 아동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63명 이었으며, 후베이성 텐먼에서는 4세 이하 아동의 남성 출생 성비가 176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크리스토프 길모토는 이와 관련해 아시아에서 과거 몇 십 년 동안 자연출생성비가 유지되었다면 1억 6300만 명에 달하는 여성이 더 살고 있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의 성비 불균형 문제는 세계의 출생성비를 107로 상승시켰다.

그렇다면 미국 전체 여성인구보다 더 많은 수의 여성과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그 핵심을 경제발전과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서 찾는다. 지난 50년 동안 아시아는 세계 역사상 어느 곳보다 출생률이 급속히 감소한 지역이었다. 1960년대 말 아시아여성들은 평균 5.7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2006년에는 2.3명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낮아진 출생률은 성별 선택의 문제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고 성 감별을 통한 낙태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첨단 의료산업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자 생활수준이 향상된 아시아인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초음파를 이용한 성 감별과 낙태수술을 이용했다. 이 이면에는 서구 강대국 단체에서 제공한 자금과 수 천명의 현장 요원, 수많은 이동진료소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윤리를 망각한 채 이익에 눈이 먼 산업계의 이기심도 작동했다.

1970년대 말까지 인구학을 이끈 맬서스 학파의 예측은 전 세계적인 인구조절과 가족계획프로그램을 뒷받침했고 서구의 원조국들은 인구증가가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심화시킨다는 명분아래 세계 힘의 균형, 특히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산아제한 정책을 가속화한다. 인구조절운동은 서구 강대국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과 정확히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더불어 1968년 출간된 폴 에를리히의 저서 '인구 폭탄'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확산시켰다. 1950년대부터 아시아에서는 포괄적인 인구조절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경제개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출생률 목표를 명시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여성이 사라진 사회에 도래하게 될 사회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거래와 인신매매, 신부 구매, 성폭력, 공격성과 폭력성이 높아지는 사회 등 세계 곳곳에서 조금씩 현실화 되고 있는 현상들을 진단한다. 2008년 한국의 국제결혼은 전체 결혼의 11%를 차지했다. 이중 한국인 신랑이 농·어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40%였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아시아 남성과가난한 이웃나라 여성의 결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닌, 현실이 돼가고 있다.

종족을 보존하려는 생물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법칙에 인간의 욕심이 개입되는 순간 이는 재앙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태아의 성별을 확실히 제어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난 30년에 불과했지만, 그 여파는 한 세기가 넘어서도 지속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생명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어두운 미래에 대한 저자의 준엄한 경고가 쓰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아이들은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이고 딸이다 /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으나 그대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 그리고 아이들은 그대와 함께 있어도 그대의 소유물이 아니다 - 지브랄 칼릴 '예언자(The Prophet) 中 성지현 기자 tweetyandy@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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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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