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오해 등 '진실'로 착각하는 거짓 역할 탐구

약을 먹을 때 의약품 설명서를 읽지 말라면 황당한 요구일까?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에 대해 들어보면 그럴 듯하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는 아무 기능이 없는 가짜 약을 효능이 좋은 약인 것처럼 속여 환자에게 주면, 병이 나을 것이란 환자의 기대 때문에 병이 실제 호전되는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이른바 위약효과다. 반대의 경우가 노시보 효과다. 몸에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가짜 약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약품에는 구토, 식욕부진부터 신경장애, 장기 손상까지 무시무시한 부작용에 관한 설명이 붙어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환자가 약 표면에 붙어있는 부작용 경고를 읽고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면 약을 안 먹느니만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거짓말을 해서 환자의 병을 낫게하려는 착한 거짓말이고 약의 부작용 경고는 가능한 사실을 말함으로써 환자에게 걱정을 안겨주니 씁쓸한 진실이다.

거짓은 꼭 배척돼야 하는가? 착한 거짓말이란 것이 정말 있는 건가? 세상은 진리와 진실을 절대 추구의 선으로 여기고 그 대척점의 거짓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거짓은 세상에서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어의 교황'으로 불리는 독일의 대표적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거짓에 관한 진실'에서 거짓에 대한 이유있는 항변을 제시한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거짓행동(사악한 의미의 그것이 아니다)과 거짓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 거짓과 관련해 역사에 남을 만한 이야기와 역할 등을 수많은 사례로써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거짓은 의도적인 속임수라기보단 많은 이들이 진실이 아님에도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이다. 저자는 착오, 착각, 자기기만, 궤변, 오해, 오판, 혼동, 과소 또는 과대평가 등 실수들을 거짓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렇게 보면 일상적인 수많은 행동들이 거짓의 그물망에 걸러진다. 별자리 운세, 외계인, 로또 당첨, 미신, 징크스, 행복한 미래의 도래 등에 대한 믿음은 다 착오, 즉 거짓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중 하나인 신에 대한 믿음도 논의해 봄직하지만 저자는 종교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영원히 진실에 닿을 수 없는 예측 또한 착오다. 예측은 '틀리면 그만'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중요한 일을 하기도 한다. 저명한 누군가가 특정 주식의 가격이 오를거라 예측하면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작용해 실제 그 주식의 가격은 오른다. 선거에서도 예측의 힘은 막강하다. 어떤 후보가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면 여론은 그에게 유리해진다.

그래도 이 정도 착오와 착각들은 귀엽다. 중세유럽에서 자행됐던 마녀 사냥에 비하면…. 마녀 사냥은 착오가 인간의 탐욕과 광기와 접해졌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지 여실히 보여줬다. 마녀 사냥은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행해졌는데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여인의 수가 최소 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간 사이의 증오가 흔하디 흔해 마음에 안 드는 이웃을 '마녀'로 '의심할 기회'가 생기면 사람들은 그 마녀를 제거할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교회의 전능과 권능을 보이는데 신자들 동의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이 끔찍한 실수는 인터넷이 등장한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창궐하고 있다. 특정인을 겨냥한 독을 품은 말들이 인터넷 이 공간 저 공간을 배회한다. 현대판 마녀사냥은 한국사회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이슈들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살면서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남자,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보시라). 약간의 거짓은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또 거짓이 인간에게 위로를 주기도 한다. 피와 불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살벌한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종교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저자는 종말론이 '선은 살아남고 악은 벌을 받고 말살된다'는 내용을 전함으로써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고 설명한다.

거짓말은 또 진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거짓말, 속임수, 허위, 위장, 보신(保身)은 진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맹수들은 먹잇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다가간다. 육식어들은 청소 물고기로 위장한다… 석기 시대의 사냥꾼들도 아마 다른 부족에게 가까운 어디에 물이 있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며, 인간들 사이에 끝없이 이어진 전쟁은 역사를 만들어 왔다. 니체는 '인간과 그 삶의 기본적인 관계는 위장이다'라고 말했다."

저자가 모든 거짓말에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사기, 비방, (정치, 광고, 언론 등에서의)오도의 용도로 쓰이는 거짓은 사악하다. 악랄하다. 다만 거짓과 진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여전히 중요하지만 손에 닿지 않는 진리와 진실을 구하기 위해서는 거짓의 참모습 또한 알아야 한다.

최정 기자 journalcj@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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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에 관한 진실 볼프 슈나이더 지음·이희승 옮김 을유문화사·303쪽·1만4000원
거짓에 관한 진실 볼프 슈나이더 지음·이희승 옮김 을유문화사·303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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