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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음악'에 담은 조국사랑

2013-04-24기사 편집 2013-04-23 21: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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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음악가 이야기 -러시아 5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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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나폴레옹을 물리친 러시아는 유럽의 대제국으로 성장하며 서구 문화와 대립하며 슬라브 민족의 우월함을 과시하려 했다. 그럼에도 19세기 러시아 사람들은 서구 유럽의 음악에 익숙해 있었다. 1840년대까지도 러시아는 교회음악이나 민요 외에는 러시아다운 클래식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양 음악사에 있어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의 강대국이 흐름을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1861년 러시아에 발생한 농노해방운동으로 당시 지배계층의 지주들이 몰락하면서 농노 출신들이 활발히 사회 진출을 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러시아 음악가들에게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파장으로 러시아다운 음악 만들기의 갈증과 갈구와 함께 러시아 5인조가 결성된다.

1875년경 러시아 민족음악을 만들기 위하여 모인 5인의 작곡가 모임인 러시아 5인조는 러시아어로 막강한 모임(Moguchaya Kuchka)이라고 부른다. 알렉산더 보르딘(Alexander Borodin, 1833-1887), 세자르 큐이(Cesar Cui, 1835-1918),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 1837-1910),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 1939-1881),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로 구성된 러시아 5인조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던 차이콥스키와 같은 보수적인 작곡가들과 대립하였다. 물론 차이콥스키나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역시 자신의 작품에 민요를 썼지만 보다 유럽 음악의 색채를 가졌던 차이콥스키와 민족음악의 색채를 강조한 러시아 5인조 두 진영은 대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나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의 러시아 5인조의 러시아라는 조국을 사랑한 마음들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발라키레프는 대지주의 아들로 러시아 5인조의 리더로 활약했으며, 큐이는 군사학 교수이자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전람회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5인조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었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로 활동했으며, 보로딘의 직업은 의사 겸 화학자였다. 이들은 음악과 관련이 없는 직업을 가졌고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으며, 음악에 있어서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러시아스러운 독창성을 가지며, 가장 러시아다운 국민주의 음악을 작곡하여 이후에 많은 러시아 음악가들이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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