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1974~)

절에 들어와 살면서 처음으로

산벚꽃 흐드러지게 핀 고갯길에 쭈그리고 앉아 울었다

무릎 포개고 두 손으로 번갈아 눈물 닦으며

털 뽑힌 장끼처럼 온 숲 울리게

서른 넘어 고갯마루 걸치는 나이에 진땀 흘리며 울었다

그 소리에 시누대가

젖은 바람으로 누웠다 일어났다

하늘 보며 잠깐 숨 고르다가

구멍 난 양말 보고

무릎 헤진 보살 옷 보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개 보고 울었다

나물 캐러 가다가

고갯길에서 뿌리박힌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 김에

내친김에,

시인을 만난 건 고창 방장산에 위치한 미소사에서였다. 뒤늦게 내린 폭설 탓에 차를 산 아래 세워두고 "고갯길"을 숨차게 올라가니 거기 절이 나타났다. 자그마한 대웅전 처마의 곡선이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의 입꼬리처럼 보였다. 그 앞에 맑은 얼굴의 스님과 선한 눈망울을 한 시인이 백구와 함께 우리를 맞아주었다.

시인은 힘든 시기에 순례 길에서 스님을 만나 절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바로 커다란 웃음으로 화제를 바꾸는데, 삭혀온 아픔들이 꽤나 무거워 보였다. 그녀는 "뿌리박힌 돌멩이에 걸려" 만들어진 삶의 상처를 다독이며 "서른 넘어 고갯마루 걸치는 나이"를 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굳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진 김에/ 내친 김에" 핑계를 찾으며 울음으로 무너지고 싶을 때가 있었으리라. 그리움 또한 넘어가기에는 너무 가파른 고개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엄니"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시인이 "쭈그리고 앉아" "산벚꽃"처럼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그 "고갯길"에는 "엄니"의 따뜻한 손길로 바람이 불었으리라.

그런데 "엄니"는 이미 시인과 함께 있는 듯하다. "구멍 난 양말"이나 "무릎 헤진 보살 옷",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개"를 보며 자신의 것으로 우는 게 "엄니"의 마음 아니겠는가?

시인·한남대 강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