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가 키스 캠벨 지음·갈매나무·296쪽·1만3800원

'사실 나, 처음 봤어 상처 입은 야수 같은 깊은 눈. 얘기만 해도 어질했다니까 … 난 정말 화가 나 죽겠어. 내 남잔 날 여자로 안보는 걸. 막연할 땐 어떡하면 내가 좋겠니? 질투라도 나게 해볼까? 속상해!'(소녀시대 'I got a boy' 중)

소녀시대의 'I got a boy' 가사를 잘 들여다 보면 노래 속 소녀는 '상처 입는 야수같은 눈'을 가진 남자에게 푹 빠져서 어쩔줄 모르지만 정작 그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속상해 한다. 자신을 보고 평범하다며 눈길도 주지 않는 남자 때문에 질투라도 나게 해야하나 전전긍긍하고 남자가 궁금하다는 '민낯'까지 공개해야 될지 고민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상황이 단지 노래가사나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었거나 가슴앓이 진행형이다.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는 즉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알았을 것이다. 노래 속 남자는 '나쁜 남자'라는 것을.

오랜시간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연해온 키스 캠벨은 책 '여자는 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가'에서 이런 '나쁜남자'를 나르시시스트로 정의한다. 저자의 나르시시즘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자기 자신을 비현실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으며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남들을 이용하고 짓밟는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여성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대신 자신이 더 똑똑하고, 잘생기고 유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성을 자신의 자아를 더 부풀리는 데 필요한 도구로만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뭐 이런 나쁜놈이 다 있냐"며 분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이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사교적이고, 자신감 있고, 호감있는 모습이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나쁜남자의 인기에는 '혹시 내가 그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여성들의 착각도 한 몫 한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지만 나에게 만큼은 친절할 것이라는 기대가 '역시'로 바뀌는 것은 길지 않다. 나쁜 남자와의 힘겨운 연애 끝에 남는 것은 영광없는 상처 뿐이다.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와 연애를 끝낸 여성들은 보통의 연애에서는 느끼지 않았을 외로움과 비참함을 느끼지만 우습게도 번번이 나쁜 남자에게 빠져 든다. 그때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의 매력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이런 여성들의 특징은 나쁜 남자를 좀 더 잘 다루는 비법을 알고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의 충고를 한다. 나쁜 남자에게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그런 남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다.

허무한 대책 같기도 하지만 이것만큼 명쾌한 말이 또 있을까. 저자는 나르시시스트를 '무례하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 남자는 이해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피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인이라는 흥미진진한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짧은 단락과 솔직한 문체로 심리학을 전혀 모르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속지를 두르고 있는 빨간 테두리나 일부 문장에 형광펜을 칠한 듯 붉게 강조한 것은 오히려 가독성을 해친다. 내용은 흥미롭지만 오래 보다 보면 눈이 아플 정도다. 최진실 기자 choitruth@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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