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음악가 이야기 -바흐

바흐는 1685년 3월 21일, 독일 튀링겐주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대대의 가풍에 따라 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음악 수업의 기초를 쌓았다. 10세 때 양친을 모두 잃은 바흐는 형 요한 크리스토프를 따라 오르도르프로 이주하여 그의 지도로 클라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성악보다는 기악 방면, 오르간과 클라비어와 같은 건반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르도르프의 학교에서 라틴어와 루터 정통파 신학을 배웠으며, 1700년 봄에 북독일의 뤼네부르크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립한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했다. 하지만 젊은 바흐는 휴가 기간을 지키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해 성직회의와 충돌 했고 결국엔 1707년, 뮐하우젠 성 블라지우스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직장을 옮긴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육촌 누이동생인 바르바라와 결혼하였다.

바흐의 '오르간 곡 시대'라고 지칭하게 만든 바이마르에서 1708년부터 새로운 직장을 얻는다. 그곳에서 그의 오르간 연주는 원숙해지고 점차 바흐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처음으로 비발디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협주곡을 접하게 되어 새로운 음악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바흐는 어느새 쾨텐 시대(1717-1723)와 라이프치히 시대(1723-1750)에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헨델과 함께 항상 거론되는 바로크의 거장이 됐다. 바흐는 예전부터 일찍이 헨델의 작품을 알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 헨델이 런던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1719년 10월에 헨델의 고향 할레에 찾아간 적도 있으나 이미 떠난 뒤여서 결국 그 두 사람은 평생 대면하지 못하였다. 바흐는 1722년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가 되었고 사망하기까지 27년 동안 그 지위에 있었다. 그리고 1749년 5월 뇌일혈 발작과 함께 그의 시력은 급속하게 감퇴되어 이후, 두 차례의 눈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을 잃고 만다. 결국 1750년 7월 28일 뇌일혈 발작을 일으키며 세상을 떠난다.

흔히 바로크시대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두고 '음악의 아버지'라 부른다. 또한 바로크 시대의 마감을 바흐가 죽은 1750년으로 정할 만큼 서양음악사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그 어느 음악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성스러움까지 느낄 수 있게 한다. 베토벤, 모차르트, 멘델스존, 쇼팽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바흐를 존경했으며 그의 작품 자체만으로 위대한 유산처럼 그들에게 훌륭한 음악적 영감을 선사했다.

괴테는 그의 '평균율곡집'을 듣고 이렇게 노래했다. "듣게 해주고 느끼게 해주오. 소리가 마음에 속삭이는 것을…. 생활의 차디찬 나날 속에서 따스함과 빛을 내리시기를…."

이상철 대전순수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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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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