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내포 DNA·기능 복원 시대적 사명

충남의 새 도청소재지 내포신도시에서 지난 4일 충남도청 개청식이 열렸다. 내포신도시는 이제 21세기 환황해권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본격적인 채비를 갖췄다.

내포의 DNA는 바다와 함께 자랐다. 내포는 바다 건너 온 해외 문물과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가장 토속적인 세계관으로 재현해 낸 곳이다. 서해가 쑥 들어온 곳이어서 밀물이 들어오면 배를 통해 내륙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한 용광로처럼 해양과 내륙의 문화를 녹여 냈고, 내포인들은 영리하게 제 것으로 만들어 냈다. 근대 이후 대중국 교역 기능과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연해 조운 기능이 상실되면서 내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지만 다시 원래의 기능이 복구되면서 충남 전체의 발전 동력으로서의 위상도 재정립돼야 할 때다.

◇충남, 그리고 내포=이중환은 책 `택리지`에서 터를 고르면 가장 살 만 한 곳으로 충남을 꼽았다. 물산이 대체로 여유있고, 산천도 평평하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서울에 가까이 있어 풍속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같은 충남이라도 공주와 대전을 중심으로 한 동부지역과 내포의 서부지역은 많은 차이가 있다. 차령산맥이 서남으로 내달리면서 충남을 나눈 탓이다. 내포는 긴 해안선의 바다를 끼고, 가야산과 삽교천이 각각 뭍과 물의 큰 줄기를 이룬다. `택리지`는 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좋다고 썼다. 큰 길목이 아니어서 임진, 병자의 두 차례 난리를 비껴갔고,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해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집이 많다고 했다. 내륙수로 기능이 쇠퇴하고, 대전권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근대 이후 발전은 더뎠지만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는 평가는 일찌감치 받았던 곳이 바로 내포다.

◇바다, 내포의 차별성=리아스식 해안은 내포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특징이다. 서해 연안은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연안 해로의 기능을 담당했다. 안면도 황도 붕기풍어제 같은 해양민속자료나 조선시대 충청수영이 설치된 보령 오천성, 세금을 걷기 위해 시도됐던 굴포 운하유적 등은 내포가 가진 독특한 해양문화유산이다. 내포가 지리적으로 가야산과 삽교천을 근간으로 하지만 핵심은 해양문화와 해양자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남이 그동안 백제고도인 공주, 부여 중심의 개발에 치우쳤다면 해양자원의 개발과 해양문화유산에 서둘러 나서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내포가 가진 독특한 차별성은 충남의 변화를 이끌 어젠다로 안성맞춤이다. 기존의 백제문화권과 더불어 충남을 견인하는 두 바퀴로 내포문화권은 좋은 주제다.

◇종교, 내포의 개방성=역사 속에서 종교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의 근간이다. 종교는 쉽사리 바꾸기 힘들고, 전쟁도 일으킨다.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진 내포가 주목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내포는 불교를 받아 들인 선진지인 동시에 독자적인 백제불교문화를 꽃 피운 곳이다. 가야산 주변의 예산 사면석불과 태안 마애삼존불, 서산 마애삼존불 등 석불 3례와 보령 성주사, 예산 수덕사·가야사, 홍성 용봉사, 서산 보원사·개심사, 당진 안국사 등은 태안반도에서 공주, 부여 도성으로 연결되는 깨달음의 길, 구도(求道)의 길의 시작임을 알린다.

천주교 유입 역시 내포는 남달랐다. 주민들의 자진구도(自進求道)에 의해 서울에 이어 두번째로 천주교회가 창설된 곳이 내포다. 1784년 예산군 신암면에서 이존창이 `여사울 신앙공동체`를 조직하면서 천주교는 이 지방에 급속히 퍼졌다.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이 당진 송산이 고향이고, 두번째 신부 최양업이 청양 농암 출신인 것은 당연했다. 서산 해미의 줄무덤과 청양 다락골 줄무덤, 보령 갈매못 순교지는 내포의 `서해루트`가 천주교 박해 시대 성직자들의 유일한 창구였음을 보여준다.

◇내포, 그리고 충남=충남도는 지난 9년 동안 `내포문화권 개발사업`에 매달렸다. 내포권사업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충남 7개 시·군에 1조 492억 원(국비 4027억 원·지방비 5630억 원·민자 835억 원)을 투자해 내륙형 복합관광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현재 종합 공정률은 30%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지부진한 60개 내포문화권개발 세부사업이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 말까지 개발 사업 예산은 국비 932억 원(23%), 지방비 1405억 원(25%), 민자 129억 원(15%) 수준에 그쳤다. 세부과제에서는 기반시설 확충 사업 등 공정률 50% 이하가 36개가 됐다. △종합전수교육관 및 진입도로 △화석전시관 고인돌 공원 △내포 보부상촌 △가야산 사적지 △명종태실 및 진입도로 △장암진성 △웅진명소 주변 △한산읍성 복원 △황도관광지 △창리관광지 △금강하굿둑관광지 △갈매못성지 진입도로 등 16개 과제는 공정률이 0%였다. 당초 계획대로 2014년까지 모든 사업을 완료하려면 국비 3000억 원, 지방비 4200억 원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내포`를 키워드로 종합적인 연구를 할 전문가 집단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내포문화권을 주제로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내포문화포럼(가칭)`의 설립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내포지역에 흩어져 있는 문화, 역사단체의 구심점을 만드는 것은 문화권을 개발하는 첫 단추다. 마스터플래너 없는 개발계획은 모래 위에 짓는 누각과 같다. 늦지 않았다. 내포를 다시 환황해권 전체를 담아낼 용광로로 만드는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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