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길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
그만큼 풍족해지고 그만큼 다양해진 게 요즘 세상인 것이다. 이른바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셔도 욕을 먹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승용차보다 비싼 핸드백을 들어도 하나쯤은 용납하는 세상이 되었다. 명절에 고향 가지 않고 해외 명품 여행을 떠나도 그럴 만한 일인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저마다 다른 것이 허용이 되는, 또 때로는 그 다르다는 것이 떠받들어지고 유행이 되기도 하는 재미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그런 풍족하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풍요로움과 세상의 다양함과 세상의 재미를 맛보는 사람이, 우리 사회라고 얼마나 될까?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그런 세상의 풍요로움과 다양함과 여유와 재미를 만끽하고 있을까?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왜 '그렇다'라고 착각하는 걸까? 왜 '나'만 그렇지 못하다고 착각하는 걸까? 우리가 만날 들여다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그리고 황금시간대를 채우는 방송 프로에 그 풍요로움과 다양한 여유만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태반은 그렇게 텔레비전 드라마와 황금시간대를 채우는 오락 프로로 채워진다. 매일 보는 게 그러니, 당연히 온 세상이 그렇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는 그런 세상보다 그렇지 않은 세상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조그만 여유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현실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금방 발견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아픈 대부분의 사람들을 두고서 텔레비전을 포함한 언론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노력하지 않은 탓이고, 그들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과연 그럴까?
최근 발표된 통계조사에 의하면, 한국 중산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삶의 수준보다 자신의 삶이 더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조사의 진실성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아니면 정말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걸까? 이른바 중산층이 '힘들다'고 느낀다면, 통계조사에서 '하류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삶은 하루하루 얼마나 더 척박해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몸이든 마음이든, 언제나 아픈 곳이 중심이다. 아프면 아픈 곳만 보이지, 아프지 않은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회도 그렇다. 아픈 곳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픈 곳이 없어야 건강한 사회인 법이다. 아픈 곳을 외면하는 사회는 더 이상의 존속가치가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사회의 존재가치, 공동체의 존재가치라는 것은 가난하고, 힘들고, 아픈 자들을 함께 보듬어 안는 데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을 그렇게 애타게 찾으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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