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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산 아래 살던 내포사람" 위기때 통합 절실 역사적 반증

2013-04-02기사 편집 2013-04-01 21: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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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치상지' 이름에 담긴 의미

첨부사진1흑치상지 등을 중심으로 한 백제 부흥군의 근거지 중 하나였던 '임존성'.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운동의 별이다. 백제 2등급 관직인 달솔과 풍달군장(風達郡長)을 겸직했다.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 격이다. 백제 패망기에 흑치상지의 부흥군은 임존성(충남 예산)에서 당나라 소정방 군대와 맞서 싸웠다. 마침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이 주류성(충남 홍성)에서 호응해 1년 여 사이에 200여 성을 회복하는 기개를 올렸다.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왕으로 삼고, 수도 사비성을 포위해 당군과 신라군을 압박했다.

역사는 거기까지다. 부흥운동의 리더였던 복신과 도침, 왕자 풍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암투를 벌이자 흑치상지는 당에 귀순한다. 당의 장수가 돼 오히려 부흥군 섬멸에 앞장섰고, 나당 전쟁 이후에는 당의 장수가 되어 각종 전투에서 무패의 전과를 거뒀다. 흑치상지는 지난 1929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자신과 아들 흑치준의 묘가 발견되면서 다시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포신도시의 정체성에 배신의 역사를 쓴 흑치상지가 거론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그의 이름이 주는 지정학적인 정체성과 그가 후세에 전하는 통합의 메시지다. 흑치상지의 성은 흑치(黑齒)다. 흑치는 검은 이를 뜻한다. 예산 출신의 향토 사학자인 작고한 박성흥 선생은 저서 '진번·목지국과 백제부흥전'에서 고대 내포지방과 고대 일본어를 기술하면서 흑치상지를 거론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덕산면의 '가야산'이다. 박성흥 선생은 불교문화가 유입되기 전 '검은 산'으로 불렸다고 주장했다. '가야'라는 말은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코끼리(象)를 뜻하는데 불교가 유입되면서 검은 산이 상왕산(象王山)이라는 이름을 거쳐 가야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국 흑치상지는 검은 산(가야산·흑치) 아래에 살던 '내포 사람 상지'라는 설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포의 덕산은 백제시대에는 금물현, 당 점령기에는 기문현, 통일신라 때는 금무현으로 불렸다. 국어학계는 이를 웅(熊)계 지명으로 금과 기는 모두 '검다(흑·검)' 또는 '곰(熊)'으로 풀이한다.

흑치상지의 이름이 주는 정체성이 내포와 맥이 닿는다면 그의 삶이 전하는 메시지는 뜨겁다. 한때 부흥군의 별이었던 흑치상지가 당나라의 선봉에 선 것은 지도자들의 분열 때문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홍성과 예산에 걸쳐 새로운 충남도청소재지인 내포신도시가 건설됐지만 홍성과 예산의 통합 논의는 여전히 겉돌고 있다. 도청소재지만 유치하면 어떤 행정통합에도 협력하겠다던 당초 약속은 온데 간데 없고, 지역 리더들의 이권 분석만 난무한다. 흑치상지가 백척간두의 국가 위기를 고민했을 때, 예산의 임존성과 홍성의 주류성은 내분이 일었다. 결국 흑치상지의 교훈은 홍성, 예산 통합의 강력한 메시지를 오늘에 던져 주고 있는 셈이다. 권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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