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 @daejonilbo.com
유권자는 그를 준비된 대통령으로 믿고 찍었다. 1998년 정계복귀 후 15년 동안 초지일관 대통령 꿈을 이루기 위한 행보를 그렇게 여겼던 것이다. 대통령 당선을 위한 충실한 자기주도학습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취임 후 보여준 결과만 놓고 보면 부족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론에 의한 착시현상 때문에 착각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준다 해도 과락을 면키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박근혜식 '수첩·밀봉·불통 인사'는 번번이 삑사리가 났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시작된 낙마사태는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장·차관 및 청와대 비서관을 포함하면 11명에 달한다. 축구팀을 꾸릴 정도의 숫자다. 취임 한달이 지났지만 낙마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이란 말이 무성하다. 이대로 가다간 15인제 럭비팀을 꾸릴 정도의 불행한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역대 정권 중 최악의 결과다. 국민들은 연이은 고위직 낙마에 익숙해져 누가 또 사퇴를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경구는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다. 잘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잘못하면 망사(亡事)의 지름길이 되고 만다. 과거 정권도 연고·정실·코드 인사로 낭패를 본 경우가 허다하다. 부실 인사의 전철이 여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인사권자의 협량(狹量)한 통치력이 원인이다. 결국 잘못된 인사는 분열과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국민적 신뢰마저 잃게 된다. 한 번 등 돌린 민심은 회복이 어려워 국민역량의 결집을 저해한다. 박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고작 44%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 임기 1년차 1분기 지지도 중 역대 최저치라고 한다. 인사 실패의 방증이다. 망사의 지름길 입구에 당도했다는 증거다. 대통령 리더십의 총체적 위기이고. 국정운영의 난맥상이 노정되고 있는 것과 다름아니다.
망친 인사는 엎지러진 물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부실인사로 국민을 부끄럽고 민망하게 만든 도의적인 책임은 어떤 방식으로든 져야 한다. 작은 예의조차 외면한다면 국민적 실망감만 커질 뿐이다. 원칙으로 포장된 '불통·밀봉인사'에 더 이상 고집을 부려서는 안된다. 국민은 대통령이 시장을 보는 주부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기 바란다. 주부는 생선·시금치·콩나물을 고를 때 가족의 건강을 먼저 생각한다. 신선도가 떨어지는지, 중국산은 아닌지, 잔류농약은 없는지 등 요모조모 따져본 후 바구니에 담는다. 대통령은 국민이 행복한 정치를 하려면 사장 보는 주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인사도 그렇게 해야 만사가 된다.
세종대왕도 주부 장보기 못지않게 깐깐한 인사 시스템을 운영했다. '정가간택(精加揀擇)-경여평론(更與評論)-중의부동(衆議孚同)'으로 이어지는 인재등용 방식이다. 첫 단계는 관직 후보를 선별해 경력과 자질, 부패혐의 여부를 면밀하게 조사해 인사자료를 만들고, 두 번째는 이를 토대로 세밀한 검증작업과 내부 관원을 대상으로 반응을 들어 본 후, 세 번째는 바깥 여론까지 들어보고 나서 임명을 했다고 한다.
중국 고사에 이런 말이 있다. 뛰어난 의사는 나라를 고치고, 변변찮은 의사는 병을 고친다고. 국민은 박 대통령이 나라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다시 끼우고 다시 그런 일이 다시 없도록 철저한 자기 반성을 하는 자세가 나라를 고치는 의사의 바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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