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1965~)
세월을 산 것
만 원짜리 세월을 사서
돌아오는 저녁 길
인디언 음악이 들려오고
괜찮다고
등을 두드리는 희디흰 눈발
달력을 샀다
태어나 처음
세월을 산 것이다
눈 속에 남은 붉은 산수유 열매처럼
환한 눈빛으로
남은 세월을 싸워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세월을 사야 한다
새 달력을 벽에 걸며 다짐한다. 올해는 하루하루 값어치 있는 날로 채워 가야지. 그리고 또 그것이 묵은 달력으로 벽에서 내려올 땐 한숨이 나온다. 너무 많은 날을 소비해버린 것 같다. 아니 처음의 계획과는 반대로 증오와 참회로 채운 날들이 많이 보인다. 달력을 걸 때의 가벼운 마음은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달력 속 실패한 날들에 대한 집착으로 과거에 묶여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서 미래를 가꾸어 가는 힘으로 삼지 못하고, 실패 자체에 자신을 가둬 둔다. '있는 돈 다 들여서라도 흘러간 세월을 사들일 수 있다면', 헛된 생각으로 또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시인의 '달력을 사'는 것은 결국 '세월을 사'는 것이란 말의 의미는 과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다짐이다. 점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사야 하'는 '세월', 얼마 남지 않아 더 귀중해진 시간들, 어찌 후회만 하고 있으랴. 시인은 '눈발'이 되어 자신의 '등을 두드'리면서, 앞으로의 날들을 치열하게 '싸워'낼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올해도 벌써 두 장의 달력이 넘어갔다. 하지만 아직 열 장의 달력 안에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붉은 산수유 열매처럼/ 환한 눈빛으로' 무장하고 숫자마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일들로 채워 나가자.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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