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띤 야간자율학습' 이제 그만

요즘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주도학습'이 대세이다. 하지만 고교생들은 자율적인 시간이 없다. 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강제 학습'이라 불리는 야간자율학습이 개학과 함께 시작됐기 때문. 학교장 재량에 의해 시행 여부가 결정되는 '야자'는 특성화고를 제외한 대전지역 대다수 일반고교에서 시행하고 있다. '야간자율학습'은 학력신장과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실시된다. 보통 평일 오후 6시(일부 5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한 뒤 고 1·2학년은 밤 10시까지, 고 3은 밤 11시 혹은 자정까지(토·일요일은 제외)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해야 한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고교 야간자율학습의 실태 및 타 시도 사례, 개선방안 등에 대해 짚어본다.

방과 후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거나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 진로를 찾기 위한 다양한 문화경험 등을 하고 싶어도 고교생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예체능 계열 진학희망자를 제외한 모든 학생이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실시하는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에 대해 해당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력신장이라는 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15일 밤 9시 대전 A여고 1학년 교실. 학생 31명 중 8명은 엎드려 자고, 5명은 이어폰을 끼고 몰래 아이돌 그룹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당직교사의 눈을 피해 만화책이나 잡지를 킥킥대며 읽거나 인기 TV드라마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중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은 단 8-9명에 불과했다.

A여고 1학년인 박모 양은 "다른 반 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야자 시간'에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은 반에서 예닐곱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충 시간만 때운다"며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소화도 잘 안 되고 졸려서 제대로 공부가 안 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근처 B고 2학년 최모 군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검도도 배우고 부족한 수학 과외도 받고 싶지만, 야간자습 때문에 운동은 못 하고 수학 과외는 주말에 몰아서 받는다"며 "일주일에 두 번만 야자를 빼달라고 사정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할 일은 주말에 몰아서 하라며 허락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대전 소재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C여고 졸업생 박모 양은 "돌이켜보면 '야자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고 했다. 고 2 무렵 진로를 정한 뒤 담임교사에게 2학기부터 실기를 준비하기 위해 일주일에 2-3일 야자를 빼달라고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박 양은 "학교에서 배려해주지 않아 주말에 사정사정해서 과외를 받았다"며 "어차피 야자 시간에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하고, 놀 아이는 노는데 한 공간에 있다고 다 공부한다고 믿는 학교가 지금도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 양은 "공부가 잘 안 될 때는 3시간 동안 겨우 수학 4문제를 풀고 집에 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참 아깝다"고 덧붙였다.

자습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당직을 서야 하는 고등학교 교사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대전 D고 교사는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면 3주에 2번씩은 당직을 서야 하고, 여교사들은 아무래도 집안 사정이 있어 대신 서주는 경우도 많다"며 "수능을 앞둔 고 3학년은 그나마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고 1-2학년의 경우 자습 집중도도 떨어지고 산만해 지도하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E여고 교사는 "솔직히 효율적인 면에서는 안 하는 게 낫다"며 "야자 시간에 학생 한두 명을 빼주다 보면 면학 분위기가 무너질 수 있어 학생들에게 '무조건 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학교가 학력신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우리 학교만 효율성을 따지며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학교마다 야자 시행의 당위성으로 면학분위기 조성 외 사교육비 절감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은 야자 후 학원행(行)을 택하고 있다. 밤 10시 야자가 끝난 뒤 곧바로 학원에 가서 밤 12시까지 졸면서 수업을 듣는 것.

올해 아들이 고교에 진학했다는 한 학부모는 "옛날에야 독서실이나 도서관 등 공부할 곳이 부족해 학교에 남아 공부했지만 요즘같이 공부할 장소도, 할 것도 많은데 굳이 왜 야자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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