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사이코메트리 (권호영 감독)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능력을 초능력이라 부른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능력이지만 과연 이것이 신의 선물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영화 '사이코메트리'는 사람이나 사물을 손으로 만지면 그(것) 안에 담긴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와 그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의욕은 불타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한 3년차 형사 양춘동(김강우).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유괴당한 어린이의 사체 유기장소가 우연히 길에서 본 벽화에 그려진 곳임을 기억해 내고 그림을 그린 사람을 쫓기 시작한다. 경찰이 찾아내기도 전에 정확한 범행 장소를 그린 그가 분명 범인이라고 생각한 것. 추적 끝에 춘동은 그림을 그린 김준(김범)을 찾아내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사물에서 읽어낸 기억을 그림으로 남긴 그는 '사이코메트리.' 남들과 다른 능력 때문에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던 준은 스스로를 '괴물'이라 생각하며 숨어 살아왔고 능력을 통해 범죄를 알게됐지만 당당하게 알리지 못하고 벽화로 남겼던 것. 준의 신기한 능력을 알게된 춘동은 준의 도움을 받아 아동 유괴범을 쫓지만 일은 꼬여가고 점점 준의 상처는 덧나기만 한다.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 사건에 대한 유난스런 집착, 거부감이 들 정도로 튀는 언행, 사고뭉치 혹은 앞뒤 꽉막힌 융통성 제로의 행동들로 무리에서 '내놓은'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분명 직업은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에 공권력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건을 눈앞에 두고 번번이 사고를 쳐서 근신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딱히 출근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줄곧 범인만 쫓는 것이다.

주인공 양춘동도 이런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다. 건들 건들한 말투와 행동, 아동 유괴에 대한 집착, 잡을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근접했다가 '말짱 꽝'으로 엎어버리는 능력까지. 근신 중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건을 쫓는 열의도 빼먹지 않는다.

양춘동을 연기한 김강우는 분명 매력있는 배우다. 훤칠한 비주얼에 제법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잘 맞는 옷'을 입고 열연했다. 하지만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것. 이제까지 김강우가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줬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캐릭터 양춘동은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거부감 없이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어떤 특별한 인상도 남기질 못했다. 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 놓은 공식 안에 늘 봐왔던 캐릭터의 뻔한 연기가 108분간 이어지니 지루할 수 밖에.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온 초능력자 김준은 '특별한' 능력자지만 그 고뇌나 상처는 보통 사람들도 공감 할만하다. 하지만 그의 연기도 매력적인 소재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피할 순 없었다. 다만 그의 덥수룩한 긴 머리, 힘 없는 눈빛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어리광쟁이 김범을 생각나지 않게 할 정도로 음울 했다는게 그나마의 소득.

미스터리물을 표방한 영화 사이코메트리에서 스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깊이가 없다. 세상에 상처받은 능력자나 어린시절 아픔을 안고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 남자는 둘 다 겉핥기에만 머문 느낌이다.

주인공의 추리에 따라 속속 등장하는 단서들이 다 따로 노는 느낌도 아쉽다. 사건의 진실을 알지만 말하지 못한 김준이 벽화를 남긴다는 설정은 신선하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단서들과 연관성이 떨어져 점점 범인을 조여가는 긴장감이 전혀 없다. 때문에 스릴은 반감됐지만 영화가 유괴사건 보다는 '사이코메트리' 자체에 무게를 주려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영화에 대한 딴소리 하나.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사이코 패스들이 이렇게 친숙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살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의 범인은 대부분이 이들이다. 살인에 대해 별다른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어쩌면 '간편한' 등장인물일 수 있고 감정의 동요없는 모습이 더 큰 공포를 주니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좋은 캐릭터 일 수 있다. 영화 '사이코메트리'의 살인범도 마찬가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연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 뒷맛이 개운치 않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살인에 납득이 갈만큼 타당한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온전히 재미로 사회적 약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스크린에 넘쳐나는 것은 영 찜찜하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적어도 한번 쯤 등을 토닥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 범인이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최진실 기자 choitruth@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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