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 40년 특별기획 - 과학기술 요람 흔드는 정치권

대덕연구단지에 불어닥친 `脫대덕` 바람은 양날의 칼이다.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철저히 준비된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분원 설립은 연구기관에게도 득이 되겠지만 치열한 유치전과 구애에 시달린 끝에 결정된 분원 설립은 조직 규모만 늘리고 운영은 부실해지는 부작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분원유치 쟁탈전을 펼치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와 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연구기관들의 고충을 점검해본다.

◇정치권의 연구원 쟁탈전=脫대덕에 대한 우려는 이미 20여 년 이전 1·2차 산업시대의 쇠락과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이 맞물리며 제기되기 시작했다.

국내 각지에서 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1·2차 산업이 더 이상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과 함께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창출하라는 요구도 거세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을 지역발전의 새로운 비전으로 간택한 지역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책 연구원 분원 쟁탈전에 나선 것이다.

현재 정부 출연연구소는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6개,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9개로 모두 15개다. 지역 분원 설립 붐이 일면서 지금까지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연구원의 분원은 25개,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연구원의 분원은 모두 28개로 늘었고 지금 추진중인 곳 상당수다. 다수의 정부출연연구기관 분원을 유치한 전북 정읍은 연구원 분원 설립이 개인의 정치력과 맞물린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지난 2000년 전북 정읍 지역구 국회의원 시절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선 과학연구소의 정읍 설립이 결정된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소재연구소, 안전성평가연구소(KIT) 제2캠퍼스 등 2개의 국책 연구원 분원을 잇따라 유치하는 데 정치력을 발휘한 일등 공신으로 불린다.

지난 2009년에는 정부 예산 1300억 여원이 투입되는 한국뇌연구원을 유치하기 위해 대전을 비롯해 대구와 인천 등이 저마다 최적지임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전을 펼치기도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연구기관 몫=이같은 연구원 분원 설립 추세에 대해 국토 균형발전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지만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입지 선정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아 실보다 본원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사례가 잦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자체와 정치권이 나서 분원을 유치하는 데만 혈안이 돼 정작 유치 후 필요한 지원에는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뇌연구원을 유치한 대구는 향후 뇌연구원에 투입되는 1300억 여원 중 부지매입비와 건축비 등 600억 여원 부담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장 대전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에 성공했지만 부지매입비 부담 문제에 부딪혀 사업이 답보 상태에 빠졌고 덩달아 연구원 기능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연구원 분원 하나가 제대로 운영되기 까지는 드는 시간과 노력도 문제다. 건설 하는 데만 최소 3-4년의 기간이 필요한데다 하드웨어 뿐 아니라 인력을 수급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분원이 설립되는 지역과 연구원의 특성이 맞아 떨어져 인적자원이 있을 경우 지역 채용이라는 해결책이라도 있지만 본원에서 분원으로 인력을 옮겨야 하는 경우 분원을 꾸리기도 힘들 지경이라는 게 연구원들의 목소리다.

정부출연연 관계자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각 지역의 산업특색이 뚜렷하고 각 산업을 뒷받침하는 연구기관이 병존하는 형태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지금까지 출연연의 분원 설립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지자체의 유치 노력에 따라 결정된 사례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분원 운영의 성패를 가늠하려면 최소 10년 이상 운영기간을 두고 봐야 하는데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심리로 뛰어들었다가 사후 관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운영 부담은 고스란히 연구기관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연 기자 pen@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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