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1954~)

늙은 재봉사가

1930년 영국산 재봉틀 앞에 앉아

낡은 옷을 깁는다

아슈바타 맑은 이파리가

춤을 춘다

그의 아버지가 재봉틀 앞에 머물 적에도

나무는 자신의 가슴 안에 들어 있는

신비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려주었고

재봉틀은 시냇물처럼 노래했다

늙은 재봉사가 바느질을 멈추고

새소리를 듣는다

밖은 어디이고

안은 또 어디인가

낡은 옷을 살피는 동안

밝음과 어둠이

번갈아오고

늙은 재봉사가 새소리에 푹 파묻힌다

재봉틀이 바람에 펄럭인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에게서 부모님의 모습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 마주치게 되는 눈빛에서,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습관들에서…. 일부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몸이라는 옷,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벗을 수 없는 그것을 물려받아 살고 있으니까요.

몸은 부모님이 '자신의 가슴 안에 들어 있는' 가장 '맑은' 마음들을 엮어 지어준 옷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의 이 마음을 늘 뒤늦게야 깨닫습니다. 세상의 온갖 상처들에 해지기도 하고, 너무 많은 욕심에 때가 타기도 하면서 '낡은 옷'이 된 뒤에 말입니다. 이 무렵이 되면 대부분 우리들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도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또 세상에 '맑은' 생명 하나를 지어놓을 테니까요. 우리의 몸에 부모님이 살듯, 아이들의 몸에 또 우리가 살게 되는 것이지요. 몸이라는 옷 때문에 '밖'과 '안',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극복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저도 '늙은 재봉사'가 되어 몸을 펼쳐 놓고 '재봉틀 앞에 앉아'보려 합니다. 해지고 때가 탄 마음을 기워 가면서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봐야겠습니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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