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관료 등 설립주체 다양 구한말 의식 근대화 역할

 구한말 의병을 중심으로 설립된 근대학교의 수업모습.
구한말 의병을 중심으로 설립된 근대학교의 수업모습.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배일의식 팽배와 함께 교육을 중심으로 한 자강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내포 지역에서도 을사늑약은 배일의식을 고취시켜준 결정적인 계기가 돼 애국계몽운동의 도화선이 됐는데 이때 배움만이 살 길이라고 여긴 일부 선지자들은 근대식 학교를 세우고 근대 교육을 시작했다.

유교적 성향이 강한 내포지역 유생들도 근대의식 고취와 근대교육에 대한 필요성만큼은 공감 했고 배움의 움직임은 식민지화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돼 자연스럽게 자강운동에 대한 관심을 높여 갔다.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변화는 의병활동에 참여했던 의병들에게부터 먼저 일어났다. 이세영과 이상린, 서승태, 문석환 등이 일본에 대한 '결사항전' 의지를 가슴 한편에 접어두고 의병활동 하기 보다는 학교설립을 통한 교육운동을 통해 일에 대항하고자 했다. 군사적 무력감을 극복하고 어린이에 대한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근본적인 자강과 국권회복을 추구한 것이다.

애국계몽운동은 마침내 근대교육기관 설립운동으로 구체화 됐다. '팔명학교(八明學校)'라 불리는 근대학교가 홍성지역에 들어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팔명학교란 영명학교, 호명학교, 덕명학교, 동명학교, 화명학교, 흥명학교, 명덕학교, 성명학교 등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이 중 덕명학교(德明學校)는 홍주의병에 참여했던 서승태가 설립한 학교라 의미가 깊다. 서승태는 1906년 민종식 의병장이 의병을 이끌고 남포에서 홍주읍성을 향해 행진할 때 지방부호의 창고를 열어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한 사람이다.

이후 1908년 홍주향교의 도유사로 재임하면서 영재육성을 목적으로 광천에 덕명학교를 설립했다. 덕명의 뜻은 학교가 소재한 덕정리를 개명하고 홍주에서 국가전체를 유신시키겠다는 의미다. 이후 김좌진을 필두로 한 안동김씨 종인들이 중심이 돼 호명학교를 설립하면서 지역의 교육에 앞장섰다. 덕명학교가 항일항쟁에 참여한 의병이 세운 학교라면 호명학교는 판서, 의관, 군수 등을 거친 전직 관료들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 같이 내포지역의 근대교육운동은 장래 유망한 젊은이를 교육시켜 미래 국가의 동량으로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특히 학교 설립의 주체가 다양하다는 점이 내포 지역의 특색이다. 주체가 누구이든 구한말 설립된 근대 학교는 주민들의 의식을 근대화 시켜 줬고 쓰러져 가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으켜 세우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는 일제강점기 후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켜 주는 자양분 역할을 하게 되면서 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됐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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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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