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20주기 展 : 빛이 있으라' 대전시립미술관 이달말까지

 이남규作 '성모자(聖母子)'
이남규作 '성모자(聖母子)'
대전시립미술관은 대전지역 미술가들을 집중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을 살펴보고자 지난 2003년 이동훈展을 시작으로 지역작가들의 기획전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 추상미술과 유리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던 故 이남규<사진> 작가의 20 주기를 맞아 '이남규 20주기 展 : 빛이 있으라'를 31일까지 1·2 전시실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작고작가로는 두번째로 진행되는 것으로 회화작품 88점, 스테인드 글라스 4점, 자료 50여 점 등이 전시돼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로 지역미술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1931년 대전 유성에서 태어난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입학해 스승이었던 장욱진 선생으로부터 정신적, 예술적 영향을 받으며 예술세계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문학과 미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정신성과 인간의 사유작용에 관한 표현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때 마침 한국에 전개되고 있던 앵포르멜을 접하며 그림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황했던 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한다. 또한 대학시절 접했던 루오의 그림들은 그를 빛과 색의 신비로운 세계에 빠져 들게 했으며 대가들의 작품과 책을 읽는데 몰두하게 했다.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세계, 즉 근원적 질서와 본질을 찾기 위해 유행을 따르지 않았으며 미술가들의 등용문과 같은 국전에도 출품하지 않았다.

1968년 삼십대 중반을 넘어 그는 친분이 두터운 신부의 주선으로 가족을 뒤로한 채 오스트리아 한 수도원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으로 떠나 6개월간 유리화 수업을 받는다. 유리화를 익히는 동안 빛을 통한 우주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고 온전한 세계, 빛에 담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언어로 풀어내려 했다. 그의 유리화 작업은 1974년 서울 중림동성당(약현성당)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이것은 한국에서 제작된 첫 번째 유리화이기도 했다. 이후 공주 중동성당, 서울 혜화동성당 등 총 40여 곳에 달하는 성당과 교회, 기관의 유리화 작품 수백 점을 제작하게 된다.

귀국 후 여섯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는 동안 그는 신장이식 수술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회복 후에는 불타는 예술혼으로 작품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1년 회갑기념전을 3일 앞두고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1993년 3월 13일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숨을 거두게 된다.

작가가 평생 추구한 작품 세계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자연과 영적 이미지를 소재삼아 색체와 형태의 조화를 탐구하여 근원적인 질서를 추상성으로 표현하고자 한 노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스케치를 하지 않고 종이를 펼쳐 놓은 채 물감과 행위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어떤 구속감도 없이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했던 세계를 회화라는 예술로 접근하려 했다. 순수하고 온전한 세계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유리화로 작품을 제작하여 '빛의 투과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했던 하나의 질서'에로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대전시립미술관 송미경 학예사는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적 단계를 중도적 입장에서 견지해온 그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중도에 작고함으로써 한국 미술계에서는 상대적 덜 알려져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을 세계를 되돌아보고 대전미술의 한 흐름도 정립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신웅 기자 grandtrust@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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