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섭 KAIST ICC 운영부장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어렸을 시절부터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일생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어떻게 성공하게 됐는지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성공한 사람이니 당연히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공과 행복,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 익숙하게 접하게 되는 말이며 비슷한 듯하면서도 때로는 뭔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성공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당연히 행복해진다고 생각할 수 있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곧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들의 일상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보통 성공은 지극히 사회적인 잣대를 바탕으로 외면적으로 나타나고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직장에 다니고, 어느 직위에 있고,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 성공 여부를 이야기한다. 세칭 스펙이 성공이라는 잣대의 열쇠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게 되고 자신의 기준보다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기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기준에서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여유로움이 없다.

그러나 행복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외형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판단의 기준은 자기 스스로에게 있다. 행복은 사회적인 스펙보다는 자신만의 스펙이 중요하다. 또 행복한 사람은 스스로가 기쁘고 즐겁게 일하기에 불평과 불만이 적고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 더 큰 행복을 느끼며 때로는 져줄 수 있는 아량도 있다.

이런 가치를 국가적으로 보면 한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서 견실한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경제위기를 어느 나라보다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어도 왠지 모르게 피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허전한 마음이 든다.

또 삼성과 현대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애플과 도요타 등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가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왜 우리라는 느낌으로 기쁨을 향유하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성공한 국가의 국민인 우리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텐데 얼마나 많은 국민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한쪽에서는 성공한 국가를 외치는데 한쪽에서는 불행한 국민을 생각하게 되는 현실에서 성공과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국민 행복 시대'는 정서적인 공감을 갖게 한다. 성공한 정부와 성공한 기업의 가치보다 행복한 국민의 가치가 존중되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국정의 지향점이라고 생각된다. 행복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보듬어주는 것에 의미를 두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국민 행복 시대가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실 역대 정부에서도 국민의 행복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오히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구호가 아닌 실천력 있는 정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조직과 자신만의 성공을 위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함께 동반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이런 국민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행복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이런 출발점은 정치권과 대기업 그리고 권력기관 같은 세칭 기득권 세력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은 '행복한 국민'이 될 것이고 결국 행복한 국민이 성공한 정부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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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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