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잃어버린 내포 역사의 비밀

 예산군 삽교읍 성리에 있는 목지국 진왕의 유적으로 알려진 대형 선돌(작은 사진). 마한시대 스진왕이 머문 곳으로 알려진 예산군 대흥면 장전리 임나성 터. 현재는 펜션촌이 들어서면서 모두 훼손됐다.  사진=예산군 제공
예산군 삽교읍 성리에 있는 목지국 진왕의 유적으로 알려진 대형 선돌(작은 사진). 마한시대 스진왕이 머문 곳으로 알려진 예산군 대흥면 장전리 임나성 터. 현재는 펜션촌이 들어서면서 모두 훼손됐다. 사진=예산군 제공
"만주지방에서 일어난 기마 민족인 부여족이 한반도 중앙부를 거쳐 경상도 남해안에 이르러 일본으로 건너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 무렵 일본은 전국시대였다. 한국의 김해 지역에 머물던 스진왕(崇神王)이 일본으로 건너가 1차 통일국가를 이뤄내 스진덴노(天皇)가 됐고, 일본이 다시 전국시대가 되면서 히미코(卑彌呼)라는 무녀가 규슈 북부지방에 나라를 세웠을 때 규슈 남부의 오진왕(應神王)이 히미코를 멸하고 일본 혼슈 중앙부를 정복했는데 이것이 두번째 일본 통일을 이룬 오진덴노다."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도쿄대 교수가 지난 1948년 발표해 일본은 물론 동북아시아 고대사를 소용돌이 치게 한 유명한 '일본 기마민족 정복왕조설(騎馬民族 征服王朝說)'의 한 구절이다. 일본 기마민족설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내포의 정체성을 찾는 단초가 있다. 바로 잃어버린 내포 역사의 비밀이다.

◇내포 정체성, 시원(始原)부터 정립해야=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포의 시원(始原)은 무령왕, 의자왕, 계백으로 대표되는 '백제'로 소급된다. 하지만 에가미 교수의 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일본 천황가의 뿌리인 북방 기마 민족이 어찌 됐든 한국에서 살았다는 것과 그들이 거쳐간 '한반도 중앙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연 한반도 중앙부가 어디였을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충남 예산군의 향토사학자 박태신 선생은 한반도 중앙부는 '내포지방'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내포 진번·목지국 설'을 주장하며 "중국의 한서(漢書)에는 내포지방의 진번국(眞番國)이 나오는데 고조선과 함께 연(燕)나라와 교역을 했던 동일시대의 옛 나라라고 쓰여 있다"며 "고대 진번국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홍성과 예산, 당진 일원이 한반도 중앙부이며 에가미 교수가 주장한 부여족의 이동 경로"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대로 라면 내포의 시원은 백제 이전으로 소급돼야 하고, 내포는 고대 일본 천황가의 뿌리인 셈이다.

◇내포, 마한(馬韓)의 중심 땅=백제 이전의 내포 지역에도 분명 사람은 살았다. 실제로 기원 전후 내포에는 수많은 부락 중심의 국가가 있었고, 강력한 부족 연맹체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마한'이 바로 내포를 기반으로 한 고대 왕국이다. 국내외 역사학계는 마한 54국을 통치한 목지국(目支國)을 아산만 이남의 어딘가로 비정하고 있으며 충남 예산이 지목되고 있다.

특히 목지국의 신지(臣智·삼한 소국의 정치적 지배자)인 진왕(辰王)은 대 중국과의 관계에서 마한 소국에 대한 교섭 주도권, 조정권, 상업과 무역을 둘러싼 진왕국연합체의 주도권과 통제권을 모두 행사했다.

다시 에가오 교수의 일본 기마민족설을 들여다 보자. "만주지방에서 일어난 기마 민족인 부여족이 한반도 중앙부를 거쳐 경상도 남해안에 이르러 일본으로 건너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 무렵 일본은 전국시대였다. 한국의 김해 지역에 머물던 스진왕(崇神王)이 일본으로 건너가 1차 통일국가를 이뤄내 스진덴노(天皇)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스진왕을 전기 마한의 지도자로 대체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내포에서 마한 제국을 통치하던 스진왕이 만주에서 내려온 기마 민족인 부여족에 밀려나 김해지역에 나라를 세웠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통일국가를 이뤄낸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수 십 년 동안 향토사학계가 주장해 왔지만 정작 충남도가 외면했던 '내포 진번·목지국 설'의 핵심은 한마디로 '일본의 국가 기원=충남 내포'라는 것이다.

◇내포 정체성, 진정성이 먼저다=2013년은 충남도가 대전청사 시대 80년을 끝으로 홍성·예산 내포신도시에 새 도청소재지를 꾸린 원년이다. 충남도가 새 도청소재지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민선 5기 3년 동안 내포신도시를 알리는 작업은 꾸준했지만 뭘 했는지, 어떤 작업을 했는지 아는 충남도민은 거의 없다. 새 도청소재지로 내포라는 말 대신 홍성이나 예산을 써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까지 나올 정도다.

내포가 가진 가치를 잘 모르는 얘기다. 내포는 동북아 고대사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할 블루오션이다. 그동안 충남이 백제 중심의 고대사로 역사·고고·문화·예술·정치 등을 만끽했다면 앞으로는 내포를 중심으로 한 마한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충남도가 내포(홍성·예산)신청사 시대를 맞아 내포의 정체성을 찾는 길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잃어버린 내포의 역사부터 제대로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내포 진번·목지국 설은 그 중 하나다. 내포는 새 도청소재지라는 이름을 넘어선다. 내포는 충남의 고대와 현재를 아우르는 새 브랜드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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