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한 집(정찬 지음·276쪽·1만2000원·문학과 지성사)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글'이다. 현실을 그대로 옮긴 신문 기사와는 다르다. 그 것을 알면서도 '이것이 진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져드는 글이 있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소설은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허물고 독자를 끌어 당긴다.

정찬의 소설집 '정결한 집'도 현실과 몽상의 경계에 서있다. 여덟 편의 단편을 엮은 책 안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그러나 깊이 알지 못하는 사건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본인의 결핍을 메우려 자식에게 초인적 역할을 기대하는 어머니와 억압을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소년(정결한 집), 100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 정리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다 사측과 협상 끝내고 내려오지만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하고 결국 목을 매는 남자(흔들의자), 자식의 결혼을 준비하다 빈부 격차가 곧 신분적 질서임을 인정하고 구경꾼으로 전락한 아버지(모과 냄새)의 모습은 '허구'로 치부하기엔 우리 사회와 너무도 닮았다.

저자는 어느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선과 악을 뚜렷히 나누기 어려운 시대적 상처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독자 앞에 끌어다 놓고 병든 사회의 아픔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환기시키는 듯하다.

물론 책 안에 담긴 여덟 편의 이야기가 모두 현실의 사건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문학적 의지와 철학적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작품도 여럿이다. '음유 시인의 갈대 펜'이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같이 죽음에 관해 신화적으로 접근한 작품도 눈에 띈다.

다만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음울하고 눅눅한 분위기 탓에 책을 덮고나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 듯한 강렬한 느낌을 오래도록 지우기 힘들 것이다. 김대영 기자 ryuchoh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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