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19세기 말 작품 재해석 그림에 담긴 의복·장신구 분석 미술 이해 새로운 방법론 제시

 오트쿠튀르를 입은 미술사 후카이 아키코 지음·송수진 옮김 씨네21북스·296쪽·1만3000원
오트쿠튀르를 입은 미술사 후카이 아키코 지음·송수진 옮김 씨네21북스·296쪽·1만3000원
1852년에 태동한 프랑스 제 2제정은 화려한 시대였다. 나폴레옹 3세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무도회, 만찬회 등의 파티를 적극 활용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새로이 부상한 신흥부유층이 상류층에 가세했으며, 예의범절과 관습이 중요시되어 절대왕정 시대의 궁정생활이 부활한 듯했다. 새로운 계층의 규범으로 장소, 시간에 따른 복장 에티켓이 생겨났으며, 이는 새로운 옷의 소비에 박차를 가했다. 파리의 상류층은 그들의 취향을 과시하기 위해 최고급 맞춤 옷을 사들였고, 오트쿠튀르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오트쿠튀르(haute couture)란 본디 '고급 재봉'이란 뜻으로 요즘에는 '고급 여성복 제작'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기성복과 달리, 예술성을 최대한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며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의 명품 브랜드들의 출발은 오트쿠튀르에서 시작됐다.

세잔, 마네, 르누아르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은 최고급 맞춤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귀부인들을 화폭에 담았다. 화가의 손을 거쳐 명화 속에 자리한 당대의 복식은 역사가 되어버린 그 시대를 파악하는 귀중한 자료이자 단서가 된다. 복식사 연구가이자 큐레이터인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명화'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놓쳐버린 부분에 주목한다. 그녀는 복식사와 미술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림 속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에 집중했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옷은 입은 사람의 성격은 물론 사회적 지위, 재산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더 나아가 문화적, 예술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코시모 1세의 부인 엘레오노라,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의 부인 조제핀 등 명화 속 인물들은 당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리더들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그들의 패션은 그림에 속에 남아 역사를 재현한다. 저자는 르네상스부터 19세기 말까지의 그림과 그림 속 인물, 패션을 다루면서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당대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말했다.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아뇰로 브론치노의 작품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와 아들 조반니 데 메디치(1545)'는 권력을 드러내는 옷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가는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최고급 벨벳으로 지은 그녀의 복장을 통해 메디치가(家) 안주인으로서의 권위와 재력을 멋지게 표현해 냈다. 더 나아가 브론치노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패션 산업을 그녀의 초상화에 옮겨놓기에 이른다. 르네상스의 섬유산업은 피렌체의 기반산업이었고, 이를 이끄는 것은 메디치가였다. 뛰어난 피렌체의 섬유산업은 도시에 부와 권력을 가져다 주었으며, 귀족들은 문화예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피렌체의 예술이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6)'는 큰 눈망울을 가진 소녀의 신비로운 자태와 진주 귀걸이로 유명하다. 해외 무역으로 부를 쌓은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는 왕족과 귀족이외의 여성들 사이에서도 진주 열풍이 불었다. 당시 진주는 천연조개에서만 채취 할 수 있는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진주양식이 시작되기 전이었던 당시 네덜란드에는 소녀가 착용한 것만큼 큰 진주는 없었다. 베르메르는 진주를 본래 크기보다 크게 그려 넣음으로써 의뢰인의 욕망을 화폭에 담아낸다.

책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8)'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양산을 통해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오는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고,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회개하는 성 마리아 막달레나(1565)' 속 줄무늬 숄이 중세 유럽 사회에서 천민, 외국인, 이교도인의 식별 표시로 사용되었음을 밝힌다.

옷은 시대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회와 역사의 산물을 입고 있는 것과도 같다. 패션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배경 지식이 미술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에 재미와 깊이를 더해 평면적인 그림에 숨을 불어 넣는다.

성지현 기자 tweetyandy@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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