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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독립 역사 간직한 민족의 성지

2013-02-13기사 편집 2013-02-12 21: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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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출범 50년 ⑥ 천안 독립기념관

첨부사진1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으로 민족적 분노가 폭발, 국민성금 모금 운동을 벌여 1987년 8월 15일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독립기념관을 지어 민족의 성전으로 삼게 됐다. 사진은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모습. 사진=천안시 제공
민족의 자주 독립과 외침을 극복한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연구·전시하는 천안 독립기념관에는 독립 투쟁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일제가 이 땅에서 저지른 악독한 죄악상과 우리 선조의 처절하고 비장한 투쟁사를 잘 보여준다.

독립기념관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건립됐다. 광복 이후인 1946년 2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독립기념관 건립을 결의했고, 1974년에는 민족박물관건립 계획을 수립했으나 혼미한 현대사로 말미암아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사건을 계기로 독립기념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같은 해 8월 28일 독립유공단체·사회단체·경제계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표들이 독립기념관 건립 발기대회를 열었다. 이어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국민성금 모금, 전시자료 수집, 전시관 건축 등을 통해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러한 전 국민적 노력 끝에 애국충절의 고장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흑성산에 부지가 마련됐다. 목천은 애국지사가 수없이 배출된 고장이자 아우내장터의 3·1만세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또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차령산맥의 수려한 경관이 배경이 되는 곳으로 건립취지에 딱 맞는 적격지였다.

기념관은 1982년 건립운동이 추진되어 1987년 광복절에 문을 열었다. 기념관 내에는 겨레의 탑, 겨레의 집, 전시관 7동, 입체영상관, 추모의 자리, 통일염원의 동산 등이 들어서 있고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가 설치, 9만 3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보존되고 있다.

7개 전시관은 겨레의 뿌리, 겨레의 시련, 나라지키기, 겨레의 함성, 나라되찾기, 새나라세우기, 함께하는 독립운동으로 구분돼 이뤄진 패널 전시를 통해 관람자들이 흥미 있게 역사적 내용을 접할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올해로 건립 26주년을 맞은 기념관은 2006년부터 대대적인 활성화 사업을 벌여 모든 전시관을 생동감 넘치는 전시물들로 교체했으며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발표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99'에 선정되기도 했다.

민족의 성지인 독립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도 2008년부터 관람이 유료에서 무료로 바뀐 이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무료 관람 첫 해인 2008년 121만 8600여 명에서 지난해 145만 9900여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아픔도 있다. 1986년 8월 4일 오후 독립기념관에서 불이나 천장부분을 태우고 다음날 새벽 진화됐다. 화재는 준공을 11일 앞둔 시점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광복절에 맞춰 개관하려던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화재원인은 전기배선공사의 부실로 인한 과전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화재로 사무처장 등 관계자가 사퇴하고 책임자 등 6명이 구속 기소됐다. 이 때문에 독립기념관은 화재 1년 후인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했다. 지난 2010년 3월 25일에도 독립기념관 제7전시관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인명과 전시물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황진현 기자 hjh7900@dea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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