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음악이야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가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노신사의 모습이 찍힌 실황 영상을 음악애호가라면 이미 접해보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영상은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칭호와 함께 1985년 자신의 조국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연주회 실황이다.

천상의 아름다움이 재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연주는 피아노 주법부터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르다. 모든 손가락을 쭉 펴고 손바닥을 건반과 수평, 혹은 밑의 위치에 올려 놓고 새끼 손가락은 연주하지 않는 동안에는 항상 접어 놓는다. 이런 자세는 누구나 따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 비르투오소인 호로비츠의 테크닉은 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왜냐하면 크거나 화려한 제스처가 없이 건반 위에 손바닥을 올린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그 파워가 피아노 현이 끊길 정도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호로비츠의 연주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런 놀라운 피아노 건반에서의 파워는 무협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내공(內功)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음향 뿐만 아니라 초인적인 테크닉, 게다가 그의 숨소리 조차 놓칠 수 없게 만드는 카리스마와 놀라운 표현력으로 공연장의 모든 소리와 청중의 시선을 지배한다.

호로비츠는 1903년 10월 1일 러시아 키에프(Kiev)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호로비츠를 보고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은 미래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할 정도로 호로비츠의 재능과 연주력을 극찬하였다. 12세에 고향에 있는 키에프 음악원에 입학하여 안톤 루빈스타인과 차이콥스키의 제자인 펠릭스 블루멘펠트를 사사하였다.

당시 호로비츠는 피아노 연주보다는 작곡에 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그로 하여금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도록 재촉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1925년 베를린에서의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한다. 그의 연주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경이로운 표현력과 테크닉은 빠르게 확산되어 알려졌고 그의 연주를 접한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슈라 체르카스키, 라두 루푸, 죠르쥬 볼레, 개릭 올슨, 바이런 쟈니스, 머레이 페라이어, 알프레드 코르토 등 수많은 연주자들이 `유일무이하다`는 형용사 수식으로 존경을 표현했으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마저 자서전에서 자신보다 호로비츠가 더 나은 피아니스트라고 기록한다. 완벽주의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악독한 지휘자 토스카니니 마저 호로비츠는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차이콥스키, 베토벤 피아노 전악장 협연 등의 수없이 많은 연주활동을 함께 해오며 토스카니니는 비록 자신보다 어리지만 음악인으로서 호로비츠를 존경하게 되는데 결국 자신의 딸 완다와의 결혼을 주선하여 그를 사위로 맞이한다.

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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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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