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아이의 도덕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훈육해왔다. "길거리에서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돼,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야.","꼭 횡단보도로 건너야 해" 등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는 순간부터 이런 잔소리를 달고 산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도덕성, 사회성 같은 인성의 중요한 덕목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부모가 얼마나 도덕적이며, 그 도덕적 잣대를 항상 일정하게 사용하는 가이다.

한 엄마가 은행을 가고 있다.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아이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하고 있다. 이제 십분만 지나면 은행업무 마감시간이다. 찻길 하나만 건너면 은행이지만, 횡단보도로 건너면 은행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와 함께 4차선 도로를 한걸음에 뛰어 건넌다. 제 시간에 맞췄다는 뿌듯함으로 은행을 향하는 엄마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그러나 길을 건널 때에는 횡단보도로 건너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던 엄마가 자신이 가르쳐왔던 것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을 한다면, 아이는 그 상황을 쉽게 잊지 않는다. 아이는 앞으로 엄마가 정한 규칙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엄마의 잘못된 행동을 모방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상황, 세 살 된 수아는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갔다. 장난감 코너가 보이자 수아는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골라 엄마에게 사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이야기 한다. 이때부터 수아는 바닥에 누워 떼를 쓰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왜 아이를 저렇게 키우지?", "아이가 우는데 웬만하면 사주지" 등.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엄마들 중 몇몇은 얼마 전 자신의 아이가 식당 안을 운동장 삼아 휘젓고 다니며 다른 손님들의 식사를 방해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엄마들은 똑같은 잘못에 대해 우리 아이와 남의 아이를 다른 잣대로 구분한다. 무조건적인 방임을 허락하는 엄마 역시 아이에게 통제가 필요한 순간에 권위를 잃게 된다.

모든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이기를 원한다. 아이에게 든든한 후원자이면서 때로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선배이자 스승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가치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소중한 교훈을 물려주고 싶어한다. 나름대로의 육아 원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도 모두 아이의 인성을 올바르게 기르기 위함이다. 아이가 도덕적인, 바른 인성의 소유자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충분한 애정을 주되, 일관된 육아 원칙에 따라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시켜야 한다. 특히 식당에서 함부로 뛰어다니며 다른 사람의 식사를 방해할 때, 다른 사람의 물건을 몰래 가지고 왔을 때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일러주어야 한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런 행동을 대수롭지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이의 도덕성 뿐만아니라 자존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교육에 파급효과가 가장 큰 것은 부모의 행동이다. 아이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부모의 감정, 사고, 행동, 말투까지 닮아가게 된다. 아이의 도덕성을 위해서는 부모 자신의 도덕성부터 점검해보아야 한다. 부부간에 서로 존경하며 배려하고 존댓말을 쓰는 것,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질서를 지키는 것 등이 아이 눈에는 따라하기의 대상이 된다. 백마디 말보다도 부모가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실천이 아이들에게 강력한 파급효과가 있다.

김세인<동국대 유아교육과 석사·대전신영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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