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목원대 회화과 교수

'형사(形似)'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닮게 그리는 것을 뜻하고, '신사(神似)'라 함은 사물이나 인물의 외형적인 형태보다는 그 대상이 갖는 내면의 정신을 닮게 그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회화로써 표현할 수 있는 사실성은 카메라 렌즈보다도 더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그것이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다. 인간의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광학렌즈를 통해 더욱 극대화하여 그려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진기술보다도 더욱 치밀하고 정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작품의 의도는 무엇일까? 화가가 기술적인 재주를 뽐내기 위함일까? 아니면 관람자에게 인간의 절대적 한계 그 이상을 과시하기 위함인가? 둘 다 아니다. 결국 회화는 회화일 뿐 실존하는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림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다.

전국시대의 법가(法家)인 한비자(韓非子)는 지극히 현실주의적 유물사상가이다. 그는 평소 "사물에 대한 관찰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논단하는 것은 게으르고 어리석은 것이며,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에 근거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이 말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진시황은 법치 사상가였던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의 도움으로 천하통일을 이룬다.

진시황은 어느 날 북문 앞에 말뚝을 꽂아 놓고 방을 곳곳에 붙였다. '북문 앞에 꽂혀 있는 말뚝을 없애는 자는 극형에 처할 것이며, 그 말뚝을 동문 앞에 옮겨 꽂아 둔 자에게는 금 일백 냥을 주겠노라.' 그러나 몇 날이 지나도 그 말뚝은 변함이 없었다. 그 누구도 허황된 말을 믿어주는 백성이 없었기 때문이며, 혹시나 극형에 처해지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누구 하나 손댈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는 술주정뱅이 왈패가 밑져야 본전이라며 말뚝을 뽑아 동문에 옮겼다. 그것을 지켜보던 관리가 왈패를 데려다가 약속대로 금 일백 냥을 상금으로 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법의 중요성과 엄중함을 일깨우게 했다. 그림을 논하는 예도 그러하다. 제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객(畵客)이 있었는데, 제왕이 물었다. "그림은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그러자 화객이 말했다. "개나 말이 가장 어렵습니다." 다시 제왕이 물었다. "그러면 무슨 그림이 가장 쉬운가?" 화객이 또 대답했다. "귀신과 도깨비가 가장 쉽습니다." 제왕이 그 이유를 묻자 화객은 "왜냐하면 무릇 개와 말은 사람들이 아는 것으로 마땅히 같게 그리지 않을 수 없지만 귀신과 도깨비는 형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화가 마음대로 그려도 시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역사 속 수많은 화사(畵史)들이 번민하고 고민했던 부분은 사실적 형태를 뛰어넘기 위한 고통이었다. 화론 중에 전신사조(傳神寫照)라는 말을 화가들은 가슴에 새기고 산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내면의 핵심, 즉 기운, 생기를 비추어야 된다는 의미다. 귀신과 도깨비는 두렵고 무섭게 그려야 한다는 것이기에 그 두려운 기운을 표출해야만 귀신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 무지한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때론 서예가 그림보다 어렵다는 것, 또한 형사(形似)보다 신사(神似)가 어렵다는 것이며, 각각 따르는 종교적 가치가 더 훌륭하고 높다는 주관적인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깊이 상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삶이란 빠르다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그림이라는 것도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그 이상의 진리가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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