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 출신 독립항쟁사 영웅들

 만해 한용운
만해 한용운
구한말 일본의 침탈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 하는 등 조선 땅이 왜세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조선인들은 갖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결국 신식무기와 신문물로 무장한 일본을 막아 내지 못하고 1910년 8월 29일 치욕을 맛보며 일본에게 주권을 넘겨준다. 구한말 홍주의병이 활동하며 기세를 떨쳤던 홍성 지역은 독립항쟁사에서도 빼어난 인물을 배출했다. 바로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과 만해 한용운이다.

◇억강부약(抑强扶弱) 백야 김좌진=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난 백야 김좌진은 어려서부터 가난한 친구를 보면 옷을 바꿔 입고 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의로웠다.

장군은 어린시절 홍주의병을 주도한 김복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의리정신과 민족수호정신을 사사 받았다. 김복한으로부터 배운 정신은 향후 그의 항일투쟁의 초석이 된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자 독립운동에 투신해 항일운동을 전개한다. 주로 군자금 모집과 대한광복회 활동을 한 그는 1918년 39명의 독립운동가와 '대한독립선언서'의 발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망명생활을 하며 북로군정서를 이끌며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하고 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휘하의 대한군정서로 개편해 1600여 명의 독립군을 훈련시켰다.

김좌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산리 대첩인데,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쳐 일본군 3300명을 섬멸 한 것은 유명하다.

장군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평생을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나 동포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설치한 금성정미소에서 고려공산당 청년회원인 박상실이 쏜 총에 맞아 순국했다.

◇"아, 님은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 태어난 만해는 어려서 서당을 다니며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며 아버지로부터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들으며 성장했다.

이에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 홍주에서 전개됐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에 안주할 수 없다고 판단, 1896년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귀국 후 설안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승려가 됐다.

1919년 만해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반일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문학사 측면에서 보면 만해는 근대적 시인, 민족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88편의 시를 모아 1926년 '님의 침묵'이라는 첫 시집을 발간했고 시조와 한시를 포함해 300여 편의 시를 남겼고 소설 '죽음', '흑풍', '후회' 등도 집필했다.

선생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항일운동을 지속해 나갔다. 1940년 창씨개명 방해 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 운동 등을 펼쳤다. 하지만 해방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조선광복과 민족독립을 코앞에 두고 입적했다. 김달호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백야 김좌진
백야 김좌진
 만해 한용운 생가   사진=홍성군 제공
만해 한용운 생가 사진=홍성군 제공

김달호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