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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의 시정신 - 노 끈

2013-02-12기사 편집 2013-02-11 21: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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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목(1962~)

마당을 쓸자 빗자루 끝에서 끈이 풀렸다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의 갈래가 많았다

생각을 하나로 묶어 헛간에 세워두었던 때도 있었다

마당을 다 쓸고도 빗자루에 자꾸 손이 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른 꽃대를 볕 아래 놓으니

마지막 눈송이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들어

남은 향기를 품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몸을 묶었으나 함께 살지는 못했다

쩡쩡 얼어붙었던 물소리가 저수지를 떠나고 있었다

묶었던 것을 스르르 풀고 멀리서 개울이 흘러갔다





마음에도 '갈래'가 많아 사람을 온전하게 읽어내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몸은 묶었으나 함께 살지는 못했다'는 시인의 말처럼, 사람의 관계는 늘 불안하다. 한 가지가 빠져나가면 '노끈'이 풀리고 마는 '빗자루'처럼, 한 물길만 새나가도 쉽게 터져버리는 '저수지'처럼 마음도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쉽게 돌아서버릴 수 있다. 종종 약해진 마음은 더 튼튼하게 둑을 쌓고, 헐거워진 마음은 새로운 끈으로 단단하게 묶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는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던 끈을 풀고 놓아주어야 하는 마음도 있다. '마지막 눈송이가', '품고 사라'진 상대방의 '향기'에는 더 이상 미련을 가져선 안 된다. 그것을 계속해서 묶어두려 한다면 자신의 마음속 얼어붙은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오래 비질을 한 나뭇가지는 닳아버리고 너무 오래 고여 있는 물은 썩어버리기 마련, 마음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때가 있다. 그러한 마음은 이제 자신에게서 녹여 흘려보내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관계를 정리한다고, 일부러 돌을 던져 깨지는 말자. 지나온 관계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기다리다 보면 '쩡쩡 얼어붙었던' 겨울의 날씨를 녹이는 봄볕처럼 따뜻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 마음으로 서로의 가슴에 얼음처럼 자리 잡은 감정들을 녹여준다면, 그 안에 새로운 관계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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