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 작가·추리문학관 관장

서민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바닷가의 값비싼 고층 아파트들. 겉으로 보기에는 바다 위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것이 마치 꿈의 궁전처럼 보이고 더할 수 없이 멋지고 근사한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언제라도 대형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들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서 50명이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이 하나같이 질식사였다. 모두가 화학물질이 타면서 내뿜은 시커먼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주민이 질식사한 참사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과연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

원인은 몇 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건물의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 한밤중에 불이 나자 곤한 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일어나 대피하기 위해 현관으로 몰려나가 출입문을 열었다. 순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시커먼 연기가 몰려들어왔다. 황급히 철문을 닫은 가족들은 콜록거리면서 집 안으로 들어왔지만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눈을 찌르고 악취를 내뿜는 시커먼 연기가 문틈을 통해 집 안으로 스멀스멀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대피할 공간이 없으니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아이들은 울부짖으면서 매달리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손바닥만 한 창문을 열어놓는 것뿐이다. 그제서야 그는 발코니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럴 때 발코니가 있다면 가족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버리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아파트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화재 예방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하게 되어 있는지 우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본의 아파트들은 저층이건 고층이건 간에 반드시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고, 발코니를 새시로 가려놓지도 않는다. 거기다 발코니는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가며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세대 간 발코니에는 형식적으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언제라도 발로 차면 떨어져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또는 다른 집에서 난 불 때문에 연기가 몰려올 경우 그 집 가족들은 일단 자기 집 발코니로 피신했다가 여의치 않으면 칸막이를 걷어치우고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막판에는 건물의 뒤쪽 발코니까지 피신할 수가 있다. 피할 데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이 온 가족이 집 안에 갇혀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우리네 아파트하고는 얼마나 다른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아파트 업자와 설계자는 요즘 아파트에는 2, 3층마다 대피 공간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문 밖에 시커먼 연기가 가득 차 있을 경우 단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대피소까지 찾아간단 말인가. 과거에는 우리 아파트에도 발코니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적인 강제 규정이 엄연히 있었다. 그래서 모든 아파트에는 발코니가 있었는데, 입주자들이 거실을 넓게 쓸 욕심으로 하나둘씩 불법적으로 발코니를 없애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그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여론에 눌려 법규정마저 흐지부지되더니 급기야 발코니를 없애는 것이 합법화되고 말았다.

법으로 한번 안 된다고 규정해 놓으면 당국은 그것을 끝까지 집행해야 하고 시민들도 그것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좀 더 넓게 살려고 하다가 참극을 맞으면 누구한테 그 탓을 돌리겠는가. 앞으로 짓는 아파트들은 이제부터라도 의무적으로 발코니를 설치해야 하고, 당국도 발코니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되살려 발코니를 없애는 어리석음을 막아야 한다. 그런 조치들을 통해 우리 아파트의 안전 수준을 일본 아파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발코니를 설치함으로써 돌아오는 이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층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통풍을 해결할 수가 있고, 태풍에 대비해서 외국처럼 덧문이나 자동 셔터를 설치할 수도 있고, 급하면 합판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도 있다. 태풍의 길목에 살면서도 태풍에 대비한 설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부산의 고층 아파트들을 볼 때마다 마치 준비나 대비를 할 줄 모르는 우리의 국민성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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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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